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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인사하기 싫었다."
경기 전, 홈팀인 요미우리 선수들이 먼저 몸을 풀었다. 하라 감독도 그라운드에 나와 배팅 케이지 뒤쪽에 서서 타자들의 타격 훈련을 지켜봤다. 잠시 후, 원정팀 오릭스 선수들이 도착했다. 이승엽도 모습을 보였다. 요미우리의 훈련이 끝나고 오릭스 선수들의 훈련시간. 이때부터였다. 이승엽과 하라 감독의 팽팽한 신경전이 시작됐다. 이승엽은 팀 동료인 T-오카다와 함께 타격훈련 2조에 포함됐다. 1조가 타격훈련을 하는 동안 이승엽은 덕아웃에 앉아 훈련 준비를 했다.
그런데 요미우리 훈련시간이 끝났는데도 하라 감독이 배팅 케이지에 그대로 서서 오릭스 오카다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승엽은 "왜 안들어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라 감독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요미우리 선수들과는 반갑게 인사를 나눴던 이승엽이지만 하라 감독에겐 인사를 하고 싶지 않다는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이승엽은 "아직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하라 감독을 계속해서 주시했다.
하라 감독도 의외였다. 1조 훈련이 끝났는데도 덕아웃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평소같으면 벌써 라커룸으로 들어갔을 시간이었다.
훈련 시간이 다가오자 이승엽은 "내 인사를 기다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이상하다. 어쩔수 없이 인사를 해야할 것 같다"며 씁쓸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로 뛰어나갔다. 원치 않는 해후였지만 그래도 이승엽은 먼저 하라 감독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자 하라 감독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특유의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큰 동작으로 이승엽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일본 사진기자들의 셔터 소리가 총소리처럼 터져나왔다. 이승엽에게 인사를 받은 하라 감독은 그제서야 덕아웃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라 감독의 의도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오키나와(일본)=신창범 기자 tigg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