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배드민턴의 위기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동메달 3개를 수확했지만 세계 상위 랭커가 대거 빠진 점과 일본의 대약진을 생각하면 사실상 '안방잔치 망신'이었다. 반면 박주봉 감독(54)이 이끄는 일본은 금 3개, 은 2개, 동 4개를 휩쓸며 사상 최고의 성과를 누렸다.
아시안게임 실패에 이어 한국은 코리아오픈 직전에 출전한 일본오픈(동 1개)과 중국오픈(노메달)에서도 허약한 경쟁력을 드러냈다. 상황이 이런데도 뾰족한 돌파구가 나오지 않는다. 세대교체를 위한 선수단 개편 과정에서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데다 집행부(대한배드민턴협회)마저 '소나기 피하기식'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집행부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커지는 등 단합 잘하기로 소문난 배드민턴계가 흔들리고 있다.
과도한 은퇴 행진…예견된 몰락?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실패를 맛본 협회는 세대교체를 통한 선수단 개편을 돌파구로 삼았다. 이후 이용대(30) 유연성(32) 고성현(31) 신백철(29) 김기정(28) 김사랑(29) 등 남자복식 최상위권 6명과 김하나(29) 이장미(24) 등 여자 베테랑들이 줄줄이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남은 여자 베테랑 정경은(28)-장예나(29)도 지난 아시안게임에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면서 밀려나는 형국이다. 이들이 대거 은퇴한 이후 한국 배드민턴의 국제무대 성적은 계속 '저공행진'이다. 후배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고, 이끌어줘야 할 베테랑을 너무 급격하게 물갈이 한 협회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대다수 배드민턴 지도자들은 "다른 종목에 비해 배드민턴은 특히 이런 특성이 강하다. 후배는 선배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경쟁하고 배우며 성장한다"면서 "세대교체도 좋지만 연착륙을 하듯 했어야 했다"고 입을 모은다. 배드민턴 스타 이용대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이효정(37)과의 혼합복식 금메달로 스타덤에 오른 후 정재성(2018년 3월 36세로 사망) 고성현 유연성 등 선배들과 함께 세계 정상을 달려왔던 것처럼 말이다. 이들 은퇴 선수는 현역 후배들과 비교해도 기량면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다는 게 배드민턴계의 정설이다. 은퇴 선수들이 개인자격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해 '상금벌이'에 급급해 대표팀을 떠났다는 주장도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협회와의 보이지 않는 갈등 등의 다른 이유들도 있었다. 선수단 개편은 협회의 결정이었다. 이 결정에 대한 의구심이 잦아들기는 커녕 지난 5월 '은퇴선수의 개인자격 국제대회 출전 자격 제한'에 대한 법정 다툼에서 선수들이 승리하면서 되레 확산되고 있다.
|
일단 꼬리 자르기…근본 대책은?
자카르타의 수모를 겪고 귀국한 협회가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대표팀 코칭스태프 7명의 사표 제출받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이른바 '시한부 인생'으로 후속 대책이 나올 때까지 지도를 맡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최근 코리아오픈을 치렀고, 이달 중순 유럽 투어를 인솔할 계획이다. 이어 협회는 지난달 19일 이사회를 열고 경기력향상위원회(이하 경향위) 위원들의 전원 사표를 제출받았다. 경향위는 대표팀 지도자와 선수단을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경기인 출신들이기 때문에 협회 고위층, 선배들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코칭스태프와 경향위의 줄사표가 아시안게임 실패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목에서 "과연 코치진의 책임으로만 돌릴 일인가?"라는 불만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협회가 '꼬리 자르기'로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협회의 '보이지 않는 힘'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요인이 존재하는 데도 아랫사람들의 책임 감수로 넘어가려 하는 것은 또 다른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여러 불만 요소들이 쌓여가고 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를 뒤숭숭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