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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들어가려다가도 선수 한명이 보이면 못들어가겠더라고요."
시작부터 힘겨운 싸움이었다. 지난해 IOC선수위원 후보로 나선 유승민은 장미란 진종오 등 걸출한 선·후배들을 넘어야 했다. 사실 후보 선정부터가 작은 기적이었다. 한국체육회의 면접과 IOC의 서류 전형, 전화인터뷰 등을 어렵게 통과한 유승민은 지난달 22일 혈혈단신 브라질 리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개막 전인 지난달 23일, 리우올림픽 선수촌에서 유세를 시작했다. 후보자 중 가장 먼저 선수촌에 입성해 동선을 파악했다. 그는 첫날에만 무려 3만3431걸음, 24.56km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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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C의 선거규칙은 엄격했다. 선수들이 모여드는 식당 내 선거운동은 엄격히 금했고, SNS도 공유, 태그 등을 철저히 제한했다. 기념품, 선물, 선거도구 사용 등은 일절 불가능했다. 식당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끼니를 때우기도 쉽지 않았다. 절친한 사이인 일본 탁구스타 후쿠하라 아이는 주먹밥과 간식을 슬며시 놓고 갔다. 루마니아 조정선수는 "힘내라"며 에너지바를 건넸다. 스트레스도 많았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 선수들과 가까이 소통하며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히 알았다. 그럴수록 선수위원에 대한 갈망은 커져갔다. 유세 종료 후 유승민은 "진인사대천명,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적어도 후회는 안 남을 것 같았다"고 했다.
마침내 유승민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문대성 위원의 임기 만료, 이건희 IOC위원의 건강악화로 비상 걸린 한국 스포츠 외교에 유승민의 당선은 금메달만큼 짜릿한 낭보였다. 선수위원은 일반 IOC위원과 임기만 다를 뿐 동·하계올림픽 개최지 투표 등 IOC 위원과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유승민은 "기쁜 것도 사실이지만 책임감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당장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우리나라에서 열리는만큼 IOC와 우리나라의 가교 역할을 잘 하면서 선수들의 권익 보호에도 나설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스포츠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2004년 아테네에서 아무도 예상치 못한 깜짝 금메달을 거머쥔 유승민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IOC 선수위원 깜짝 당선으로 행정가의 길을 걷게 됐다. 허투루는 없다. '명함만' 선수위원이 아닌 '행정 업무까지 완벽히 처리하는' 선수위원을 꿈꾼다. 물론 유세에서 보여보여준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을 생각이다. "선수 유승민이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이었다면, 행정가 유승민은 눈빛이 따뜻해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유승민의 새로운 도전이 이제 막 시작됐다.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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