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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선수] `빙상레전드`이규혁"36세 늦공부가 재밌다"

기사입력 2014-11-06 17:33 | 최종수정 2014-11-0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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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 레전드' 이규혁(왼쪽)이 체육인재육성재단 국제 스포츠인재 전문과정 수업중 임오경 서울시청 핸드볼 감독과 나란히 앉아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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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레전드' 이규혁이 스마트폰 필기장에 수업내용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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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레전드' 이규혁이 '클래스메이트'인 임오경 서울시청 핸드볼 감독, 박종훈 축볼 국가대표 감독, 이근로 대한바이애슬론 연맹 경기이사 등과 나란히 앉아 수업을 경청하고 있다.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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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혁이 커뮤니케이션 수업중 정용준 현대인재개발원 교수의 강의를 스마트폰에 열심히 받아쓰고 있다.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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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 스케이팅 레전드' 이규혁은 요즘 선수 때보다 더바쁘다. 공부, 일, 운동, 사람 어느것에도 소홀함이 없다.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4.10.28

지난 겨울 소치동계올림픽, 이규혁(36)은 영웅이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없이 이렇게 뜨겁게 사랑받은 선수는 일찍이 없었다. 이규혁은 1등만을 기억하는 대한민국 스포츠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13세 때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된 '빙상신동'은 유독 올림픽 무대에만 서면 작아졌다. 1997년 1000m, 2001년 1500m 세계신기록을 연거푸 갈아치우고, 2003년, 2007년 아시안게임 2관왕, 세계선수권 우승, 세계스프린트선수권 우승 4회 등 나가는 대회마다 대한민국 빙상의 역사를 새로 썼다. 그러나 올림픽 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4년 릴레함메르에서 2014년 소치까지 6번의 올림픽은 늘 아쉬움이었다. 소치동계올림픽 남자스피드스케이팅 1000m 생애 마지막 경기, 이를 악문 36세 노장의 레이스는 아름다웠다. '안되는 줄 알면서 도전하는 것이 슬펐다', '아직도 금메달을 꿈꾼다'던 이 선수의 한결같은 꿈과 투혼에 팬들은 열광했다. 지난 4월 7일 선후배, 체육인들의 따뜻한 축복속에 은퇴식을 가졌다. 은퇴 후 7개월, 이규혁은 선수 때보다 더 바쁘고 치열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10월의 마지막 월요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체육인재육성재단 강의실에서 '빙상 레전드' 이규혁을 만났다.

나는 늦공부가 재밌다

서울시청 플레잉코치로 일하는 이규혁은 은퇴와 동시에 미뤄둔 공부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 여름 고려대학교 체육교육대학원 석사논문을 마무리했다. 치열했던 6번의 올림픽 도전사를 고스란히 논문에 담아냈다. 체육인재육성재단의 대표 프로그램인 '국제 스포츠인재 전문과정'에도 도전했다. 평소 친누나처럼 가까이 지내온 스키 국가대표 출신 김나미 체육인재육성재단 사무총장이 이규혁에게 직접 이 과정을 추천했다. 리더십, 매너, 프리젠테이션, 스포츠 행정 등 실무 중심의 이 과정은 지난해 '사격왕' 진종오가 수강했던 강의다. 엘리트 선수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 이규혁은 바쁜 일정을 쪼개 일주일에 2번, 재단을 찾는다. 저녁도 거른 채 학구열을 불태운다.

이날 수업은 정용준 현대인재개발원 교수가 진행하는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스킬' 과목이었다. 임오경 서울시청 핸드볼 감독, 이희문 조정 국제심판, 박종훈 축볼 국가대표팀 감독, 이근로 대한바이애슬론연맹 경기이사 등이 이규혁의 클래스메이트다. 대중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할 때 유의해야 할 점에 대한 강의에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정 교수는 이규혁의 과제 내용을 발췌해 화면에 띄웠다. '좋은 예'로 인용했다. "이규혁 선생님의 프리젠테이션 구성이 잘됐다. 설득력을 높이는 논리구성이다. 겹치는 게 없이,오래 학습한 것도 아닌데 감각적으로 알고 있는 것같다"고 칭찬했다

체육인재육성재단의 수업은 '쌍방향'이다. 교수가 화두를 던질 때마다 5명의 교육생들이 앞다퉈 대답하고, 토론하는 적극적인 분위기는 인상적이었다. 1교시 이론 수업에 이어 2교시 실기수업은 다이내믹했다. 정 교수는 학생들이 직접 프리젠테이션한 동영상을 꼼꼼하게 편집해 왔다. 시선처리, 말투, 발성 등 장단점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원센텐스 원퍼슨(One Sentence One Person, 한문장에 한사람)' 원칙에 따라 눈을 맞추는 시선처리를 연습했다. '애국가' '산토끼' 가사에 맞춰 '한문장에 한사람씩' 시선을 주는 실습이시작됐다. 자신의 순서가 오자 이규혁은 불쑥 "딴 노래로 하면 안돼요?"라고 했다. 서태지의 '난 알아요'였다. "난 알아요/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누군가가 나를 떠나버려야…"에 맞춰 시선처리를 완벽하게 해냈다. 유쾌한 몸짓에 웃음이 터졌다. 두려움없이 수업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이규혁은 "늦공부가 재밌다"고 했다. "전혀 다른 분야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관심있는 분야, 현장과 관련된 분야를 공부한다. 이론과 현장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재밌다"며 웃었다. 3시간 수업은 눈깜짝할 새 지나갔다. 다음날 고려대 경영대학원 최고위자 과정에서 특강을 하게 된 이규혁은 쉬는 시간에도 교수에게 질문 공세를 펼쳤다. "저보다 연세가 있는 분들 앞에서 강의할 때는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하나요." "어떤 말투, 어떤 자세로 이야기 해야 예의에 맞을까요." 열의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9주째 커뮤니케이션 수업을 진행한 정 교수는 '학생' 이규혁을 칭찬했다. "TV로 보던 선수를 교육생으로 만나니 상당히 다른 느낌이었다. 워낙 바쁘고 수업에 흥미가 없을까봐 걱정했는데, 기우였다"고 했다. "열심히 듣고 열심히 질문하고 수업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가한다. 스타의식도 없고 소탈하다"고 평가했다. "지난주 팀원들이 조를 나눠서 하는 게임이 있었는데 흐름을 잘 읽고, 센스있게 대처하는 모습에 놀랐다"며 웃었다.

임오경 감독은 "규혁이는 정말 열심히 산다"고 칭찬했다. 임 감독은 이규혁과 교실 안팎에서 '절친'이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답게 생각의 속도도 스피디하다"고 평가했다. "세계 무대에서 1등하고 메달을 따는 선수들은 프라이드가 있다. 사회에 나와서도 최고가 돼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규혁이는 창의력도 있고, 뒤로 물러서거나 빼지 않는다. 언변도 좋고, 선수 출신 특유의 센스도 있다"고 귀띔했다.

공부하는 선배의 길은 후배의 이정표,


이규혁은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직후부터 은퇴를 생각했다. "바로 운동을 접는다고 생각하니 우울했다. 한해 더 운동하면서 은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성적이 잘나왔다. 결국 소치올림픽까지 오게 됐다. 심적으로는 4년에 걸쳐 은퇴를 준비했다"고 했다. "무엇보다 지식을 채우는 부분이 필요했다. 중학교 때부터 누나로 지낸 김나미 사무총장에게 설명을 들었다.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좋은 프로그램을 소개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 역시 후배들에게 이 프로그램을 알리려고 한다"고 했다. 이규혁은 은퇴 이후 가야할 길을 하나로 한정짓지 않았다. 14일부터 시작되는 국제빙상연맹(ISU) 월드컵에선 방송 해설위원으로 마이크 앞에 선다. 국가대표 지도자의 꿈도 유효하지만, 여전히 신중했다. "선수 겸 코치로 7~8년 일하면서 가르치거나 조언하는 것에 대한 경험은 쌓여있다. 미래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 오랜 기간 국가대표로 배려받고 경험을 쌓은 만큼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나이가 있는 만큼 코치 감독 이외에 심판 해설 행정 등 다각도로 내게 가장 잘 맞는 진로를 고민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확실한 것은 무엇을 하든 '공부'도 '도전'도 계속돼야 한다는 점이다. "석사 논문을 마친 만큼 박사과정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스케이팅 선수출신으로서 잘할 수 있는 국제심판에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지도자가 되더라도 예전과는 달라야 한다. 누군가의 말만 듣고 움직이기보다, 내가 분명히 알고 행동해야 한다. 똑똑한 지도자, 스마트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부'는 한국 빙상에 기여하기 위해, 자신을 채워가는 의미있는 배움의 시간이자, 4년 후 평창올림픽을 위한 준비과정이다. "내가 운동하던 시절만 해도, 운동하면서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안되는 일'이었다. 운동만 죽어라 해도 정상에 오르기는 어렵다. 나만의 고정관념도 있었다"고 했다. "요즘은 학생선수들이 많다. 학점을 따야 경기를 나갈 수 있고, 국내나 국외나 마찬가지다. 내가 해보지 못한 일을 후배들에게 강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고정관념을 깨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배의 길은 후배의 이정표가 된다. "처음 가는 길이 힘들긴 하지만, 앞에서 선배들이 먼저 가면 뒤에 따라오는 후배들은 한결 수월하게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뿐 아니라 많은 선수들이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다. 국가대표를 오래 한 선수로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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