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우리 태환이 어깨를 보더니, '노인의 어깨'라고 하더라고. 허허."
인천아시안게임 개막을 앞둔 마지막 주말, 가족들은 남몰래 속을 끓였다. 12일 마이클 볼 감독과 함께한 마지막 자유형 400m 구간별 기록 테스트에서 '세계기록 ' 페이스가 나왔다. 가상실전에서 혼신의 역영을 펼친 직후 어깨, 등허리에 무리가 왔다. 몸이 무거워지며 스트로크가 뻑뻑해졌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D-데이를 차근차근 준비해온 박태환 전담팀에 비상이 걸렸다. 8월말 귀국 이후 2주내내 인천박태환수영장을 떠나지 않았던 박태환이 처음으로 집을 찾았다. 어머니 유성미씨는 지난 8월 호주 마지막 전훈에 동행해 '집밥'으로 아들을 응원했었다. 엄마의 특효제, 지친 아들을 위한 마지막 집밥은 '산낙지'였다. 힘좋은 낙지를 산지에서 주문했다. 처음 만져보는 낙지를 징그러운 줄도 모르고, 열번이고 백번이고 박박 씻어냈다. 큰경기를 앞두고 가족끼리 수영 이야기는 금기다. 산낙지의 외관에, 미간부터 찌푸리는 아들에게 "몸에 좋은 음식이니, 백번씩 꼭꼭 씹으라"는 말만 반복했다.
'투혼의 레이서' 박태환이 21일 오후 박태환문학수영장에서 펼쳐진 인천아시안게임 첫경기 남자자유형 200m에서 1분45초85의 기록으로 3위에 올랐다. '필생의 라이벌' 쑨양과 런던올림픽 이후 2년만에 다시 만났다. 도하, 광저우대회에서 잇달아 자유형 200m 챔피언에 오른 '디펜딩챔피언' 박태환의 최고기록은 4년전 광저우에서 수립한 1분44초80, 아시아최고기록은 쑨양이 지난해 9월 선양중국체전에서 수립한 1분44초47였다. 초반부터 치고 나간 박태환은 24초57의 기록으로 첫 50m 구간을 통과했다. 1위였다. 100m 구간에서는 쑨양과 치열하게 다퉜다. 1위가 쑨양, 2위가 박태환이었다. 박태환의 100m 구간 기록은 51초41. 150m 구간에서도 1분18초34로 2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힘이 떨어졌다. 100m 구간에서 처지는 듯 했던 하기노 고스케에게도 밀렸다. 결국 박태환은 3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하기노가 1위, 쑨양은 2위에 올랐다.
2년전 런던올림픽에서는 박태환과 쑨양은 거짓말처럼 똑같이 1분44초93을 찍었다. 안방에서 펼쳐진 진검승부, 조국의 이름으로 외롭게 물살을 갈라온 박태환의 어깨가 너무 무거웠다. "쑨양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내 자신의 기록에 도전하는 레이스를 하겠다." '노인의 어깨'로 흔들림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박태환의 레이스는 최선이자, 감동이었다. 23일 자유형 400m에서 '세기의 라이벌'이 또다시 격돌한다.
인천=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