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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 부천 프런트의 아름다운 퇴장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3-07-10 16:59 | 최종수정 2013-07-11 08:14


오중권 국장(오른쪽)이 부천 홍보관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부천FC

"이제는 다시 서포터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야지요. 걱정되지만 잘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에는 약간의 울먹임이 섞여 있었다. 애지중지 잘 키운 자식이었다. 이제 떠나보내야할 때였다. 7월 초 오중권 부천FC 사무국장과 신동민 미디어팀장, 박기택 지원팀장이 구단을 떠났다. 이들은 한국 축구계에 유일무이한 '무급 자원봉사 프런트'였다. 그들의 7년 스토리를 들었다.

우리 팀이 사라졌다

2006년 2월 부천SK는 갑자기 제주로 연고이전을 선언했다. 오 국장과 신 팀장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었다. 둘 다 1990년대 후반부터 부천 서포터인 헤르메스로 활동해왔다. 축구가 너무 보기 싫었다. 다 내팽개치고 떠나고 싶었다. 부천 종합운동장에 모여 술만 퍼 마셨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오 국장은 부천SK의 연고이전 선언 한달 전 붉은악마 대의원회의장에 당선됐다. 신 팀장 역시 붉은악마의 대외 홍보를 맡고 있었다. 그해 3월 1일 앙골라와의 A매치에서 붉은악마는 검은 옷을 입고 응원에 나섰다. '검은악마' 사건이었다. 오 국장과 신 팀장이 붉은악마와 K-리그 서포터스 연합에 호소한 결과였다.


신동민 팀장이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부천FC
잡상인 취급까지

2007년 붉은악마에서 임기가 끝난 둘은 부천에 다시 팀을 만들기로 했다. 박 팀장도 동참했다. 기업을 찾아다녔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도움을 호소하러 간 곳마다 잡상인 취급했다. 지역에 호소하기로 했다. 세 사람 모두 자신의 일이 끝나면 부천 지역 유지들을 만났다. 뜻이 모였다. 2007년 12월 부천FC 1995가 창단됐다.

2008년 챌린저스리그에서 뛰었다. 여전히 어려움이 많았다. 지역의 특성상 큰 기업이 스폰서하기가 힘들었다. 다시 지역으로 들어갔다. 동네 식당이나 호프집 등을 공략했다.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5년을 버텼다. 적은 금액이지만 흑자도 냈다. 뿌듯한 순간이었다.


박기택 운영팀장. 사진제공=부천FC
이제 제자리로


2012년 희소식이 들려왔다. 프로연맹에서 2부리그 출범을 알렸다. 챌린저스리그에서 검증된 부천은 연맹의 우선가입대상이었다. 그런데 시의회가 발목을 잡았다. 10월 부천FC 지원조례안을 부결시켰다. 세 사람은 시의원들을 하나하나 만나 설득했다. 12월 조례안이 통과됐다. 프로 2부리그팀으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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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는 어려웠다. 챌린저스리그와는 차원이 달랐다. 지켜야할 룰도 많았다. 역시 재정이 가장 문제였다. 이 시점에서 오 국장과 신 팀장, 박 팀장의 고민이 시작됐다. 무급 자원봉사에는 한계가 있었다. 부천시와 구단은 셋에게 상근직으로 일해달라고 요청했다. 정중히 거절했다. 팀이 제 궤도에 올라가면 전문가들에게 맡기자는 결론을 내렸다.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득을 챙기려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을 걸러내느라 시간이 걸렸다. 전반기를 끝낸 뒤 결단을 내렸다. 셋은 자신의 자리를 내놓고 서포터로 돌아갔다.

오 국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포터로 돌아가는 날을 기다렸지만 서운함도 있다. 이제 익숙하지는 않지만 부천을 뒤에서 지켜보겠다'고 썼다. 신 팀장은 "우리가 있어야할 제 자리로 돌아왔다. 이제는 경기장에서 큰 목소리로 부천의 발전을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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