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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탁구,'차세대' 있긴 한 건가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2-12-11 08:44



대한민국 남자탁구, 과연 '차세대'가 있긴 한 건가.

지난 8월 런던올림픽 남자탁구 단체전에서 '베테랑 삼총사' 오상은(35·KDB대우증권)-주세혁(31)-유승민(30·이상 삼성생명)이 감동의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10년 넘게 세계 톱10을 유지하며 대한민국 탁구를 이끌어온 에이스들이 함께한 마지막 올림픽이었다. 대한탁구협회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목표로 야심찬 '세대교체'를 선언했다. 1990년대 전후로 태어난 '차세대' 김민석(20·KGC인삼공사) 서현덕(21) 이상수(22) 정상은(22· 이상 삼성생명) 정영식(20·KDB대우증권)등에게 시선이 쏠렸다. 형님들의 명성에 가려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이들에게 천금의 기회가 찾아왔다. 어려서부터 또래끼리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해왔다. 일찍이 프로투어 무대 및 중국리그를 경험하며, 선진 공격 기술을 익힌 이들은 잊을 만하면 마롱, 장지커 등 중국 톱랭커를 격파하는 '사고'를 치며 기대를 모았다. 삼성생명 대우증권 KGC인삼공사 등 소속팀 역시 올림픽 직후 차세대 에이스를 일제히 전면에 내세웠다. 인터뷰 때마다 "형님들이 떠난 자리를 메우겠다. 만리장성을 넘겠다"며 투지를 불살랐다.

문제는 차세대들에게 멍석을 깔아준 런던올림픽 이후의 성적이다. 뜨거운 기대와 화려한 스펙에 비해 최근 이들이 국제무대에서 보여준 결과물은 한없이 초라하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12월 현재 차세대 5명 가운데 국제탁구연맹(ITTF) 세계랭킹 30위 이내에 이름을 올린 선수는 단 한명도 없다. 특히 탁구인들이 첫손에 꼽는 차세대 최고 에이스 김민석-서현덕의 부진은 안타깝다. 탁구인들은 올시즌 프로투어 일본오픈 복식에서 우승한 이들의 조합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가장 유력한 금메달 카드로 지목했었다. '김-서' 조는 11월 초 독일오픈에서 대만조에 져 1회전 탈락하더니, 지난 8일 올시즌 프로투어 랭킹순으로 8개조가 출전한 그랜드파이널 무대에서 2번 시드를 받고도 또다시 1회전 탈락의 쓴잔을 들이켰다. 상대가 '일본 신예 에이스' 니와 코키(22위)-키시가와 세이야(26위) 조라는 점은 더욱 가슴 아프다.

런던올림픽 이후 이들의 성적은 하향곡선을 그렸다. '왼손 에이스' 서현덕은 지난 4월 27위였던 랭킹이 12월에는 52위까지 추락했다. 올해 1월 24위였던 김민석 역시 11월에 50위까지 떨어졌다. 독일오픈 단식 8강에 오르며 12월 랭킹을 35위로 끌어올리긴 했지만 차세대 최고 에이스의 이름값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했다.

국내 경기에서도 맥을 추지 못했다. 지난달 탁구최강전에서는 '맏형' 오상은이 후배들을 줄줄이 물리치고 우승컵을 안았다. 10년 넘게 아성을 지켜내고 있다. 노장 투혼을 칭찬해 마땅하지만, 차세대의 부진은 뼈아프다. 유승민 주세혁 오상은 등 걸출한 선배들이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국제무대에서 우승, 준우승을 휩쓸었던 전력과 비교해보면 실력차는 확연하다. 냉정하게 말해 '우물안 개구리'다. 팀내에선 저마다 최고 에이스일지 몰라도, 국제무대에서는 4강에 이름 올리기도 어렵다. 스포츠팬들은 이들의 이름조차 잘 모른다. 팬들은 여전히 유남규 김택수 이철승 유승민 주세혁 오상은만을 기억한다. 직시해야 할 '불편한 진실'이다.

한국탁구의 중심에 선 '차세대'들은 책임감과 위기의식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2년 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중국, 일본, 심지어 대만에 밀려 동메달도 힘들지 모른다는 위기론이 불거지고 있다. 차라리 중고등학교 유망주를 발굴해 끌어올리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온다. 자칫 베테랑 선배와 걸출한 후배 사이에 '낀' 불행한 세대가 될 가능성도 있다. 어린시절부터 탁구 엘리트였던 이들은 실업팀의 지원을 당연시하며 받아왔다. 대표팀에서 탈락하더라도 실업팀의 이해관계에 따라 추천전형으로 발탁되는 경우도 적지않았다.

지도자들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향후 팀내에서도, 태릉에서도 무한경쟁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표팀 발탁에 있어서도 이름값에 기댄 특별처우는 절대로 없어야 한다. 승패에 대해 보다 혹독해지고 절실해져야 한다. 성적에 따른 신상필벌과 함께, 긴장감을 높여야 한다. 결과를 내지 못하는 선수에 대한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 투자는 줄여야 한다. 아시안게임 전략종목인 복식조의 경우 김민석-서현덕조뿐 아니라 2010년 로테르담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김민석-정영식조, 체코오픈에서 우승한 서현덕-이상수조 등 다양한 조합을 경쟁시킬 필요가 있다. 소속팀의 이해를 떠나 이들 복식조를 중심으로 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훈련 시스템을 수립해야 한다. 2년 후를 지금부터 착실히 준비해야 한다.

'맏형' 오상은은 우승 후 인터뷰에서 "빌빌대면서 뛸 생각은 없다. 후배들에게 밀린다는 생각이 들면 언제라도 은퇴할 준비가 돼있다"고 했다. '형만한 아우'를 만날 수 있을까. 한국 탁구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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