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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나의 정신적 멘토다.'
'누나 이상의 누나' 박인미씨를 한줄로 표현해달라는 주문에 박태환은 '누나는 항상 나의 정신적 멘토다'라고 답했다. '박태환 누나' 박인미씨는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꽃다발녀'로 유명세를 치렀다. 3관왕에 오른 박태환이 시상식에서 받은 꽃다발을 미모의 여인에게 건넸다.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박태환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여자친구에요." 농담이 기사화됐다. 즐거운 해프닝이었다.
일곱살 차이, 이 남매의 우애는 '올림픽 금메달감'이다. 박인미씨는 어린 시절 일하는 엄마 대신 박태환에게 우유를 먹여주던 누나다. 한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누나에게 옷걸이로 맞아본 적도 있다"고 털어놨을 만큼 때론 부모보다 엄격한 누나였다. 철없던 초등학교 시절, 이미 철이 든 누나는 유방암으로 투병하던 엄마 몫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다. 한달에 100만원씩 들어가는 동생의 수영 레슨비 때문에 고등학생 누나는 변변한 과외 한번 못해봤다. 하지만 신나게 물살을 가르며 매번 금메달을 가져오는 기특한 동생이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모두가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던 2009년 세계선수권 '로마 쇼크' 때도 누나는 든든한 '비빌 언덕'이었다. 수영밖에 모르고 살아온 박태환에게 예쁘고 강인한 누나는 물보다 진한 '핏줄'이자 뭐든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이자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는 '멘토'였다. 바쁜 일상 속에 함께 심야영화를 보고, 쇼핑, 여행도 늘 함께 한다.
지난해 7월, 박씨는 임신 3개월의 몸으로 중국 상하이로 날아갔다. 상하이세계선수권에서 언제나처럼 동생의 금메달을 뜨겁게 응원했다. 경기 전날 긴장감에 극도로 예민해진 순간에도 박태환의 유일한 통로는 누나다. 누나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긴장을 푼다. 자유형 400m에서 쑨양, 파울 비더만 등 쟁쟁한 라이벌을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건 박태환은 "(뱃속) 조카가 와서 금메달을 딴 것같다"는 감사의 코멘트를 잊지 않았다.
'열혈누나' 박씨는 지난 2월 초 딸을 출산했다. 바로 이튿날 시작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스테이트오픈 챔피언십에서 '삼촌' 박태환은 펄펄 날았다. 3관왕에 올랐다. 자유형 1500m(14분47초38)에서는 무려 5년2개월만에 자신의 한국최고기록을 경신했다. 박씨는 첫 딸의 이름을 '태희'라고 지었다. 자랑스런 삼촌 박태환의 '태'자를 따왔다.
볼 코치 '수영인생 새 길 열어준 아버지 같은 존재'
박태환은 국가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함께 내한한 볼 전담코치를 '내 수영인생에 새로운 길을 인도해준 아버지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광저우아시안게임 3관왕, 상하이세계선수권 자유형 400m 금메달, 볼과 함께한 레이스에서 박태환은 승승장구했다. 지난해 상하이에서 '1레인의 기적'을 일굴 당시 볼 코치는 위축된 박태환을 향해 "네 기록만 생각해라" "할 수 있다"며 무한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박태환은 정확한 목표치에 근거한 과학적인 훈련법과 선수의 마음을 움직이는 리더십으로 무장한 볼 코치를 아버지처럼 믿고 따른다.
박태환은 라이벌들에 대해 '마이클 펠프스는 수영 황제' '파울 비더만은 파워형 선수'라고 촌평했다. 라이언 록티에 대해선 역시 같했다. '대기만성형 노력파, 내 수영의 자극제'라고 평했다. 스물여덟살에 펠프스를 누르고 절정의 기량을 뽐내는 록티에 대한 찬사다.
한편 자유형 400m 최대 경쟁자인 쑨양에 대해선 '궁금증을 유발하는 선수'라고 답했다. 쑨양은 지난 3일 중국대표선발전에서 자유형 400m 시즌 최고 기록(3분42초31)을 수립했다. '승부사'답게 쑨양과의 대결에 긴장감보다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훈련해온 대표팀 동료들에 대한 애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말부터 호주 전훈을 함께해온 '엄친아 선배' 이현승에 대해 '런던올림픽 동반자이자 친구같은 형'이라고 평가했다. 23일 동아수영대회 자유형 1500m에서 올림픽 기준기록(15분11초83)을 통과해 런던에 함께 가자는 염원을 담았다. '평영 기대주' 최규웅에 대해서도 '한국수영의 기타지마가 되길 바라는 후배'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동기이자 절친한 누나인 장미란도 빼놓지 않았다. '런던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으로, 함께 활짝 웃길 바라는 누나'라고 썼다.
'그림자' SK전담팀은 '토니 스타크, 키다리아저씨'
런던 2연패 프로젝트를 위해 동고동락하는 SK텔레콤 전담팀은 박태환에게 또 하나의 식구다. 호주 브리즈번 전지훈련 내내 한지붕 아래 생활한다. 함께 훈련하고, 함께 시장 보고, 함께 먹고 잔다. 이미 볼 것 안볼 것 다본 사이다. 쾌활한 성격의 권세정 SK전담팀 매니저를 '든든한 전담팀의 맏형이자 활력소'로 칭했다. 권태현 체력담당관은 박태환의 웨이트트레이닝을 전담하는 트레이너다. '나를 아이언맨으로 만들어주는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의 본명)'라는 센스있는 정의를 내렸다. 지난 상하이세계선수권에서 이슈가 된 박태환의 농밀한 잔근육은 '권선생님'과 박태환의 치열한 결과물이다. 훈련 전후 몸과 마음, 아픈 곳을 두루 어루만져주는 박철규 의무담당관을 '나의 키다리아저씨', 낯선 호주땅에서 의사소통을 전담하는 강민규 통역담당관을 '나의 메신저'로 칭하며 감사를 표했다. 지난 2월 박태환의 단국대 학위수여식에서 SK전담팀 선생님들은 만년필을 선물로 건넸다. 대학원에 진학한 박태환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교수가 돼라"는 의미를 담았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