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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전 사이클 꿈나무' X제주탁구동호회장님과 '어울림 복식' 다시 꿈이 시작됐다[인천 어울림생활체육대축전]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22-09-06 17:39 | 최종수정 2022-09-09 08:13


지난 4일 제1회 인천 전국어울림생활체육대축전 '휠체어 어울림 남자복식'에서 동메달을 딴 '사이클 꿈나무' 출신 김대겸(왼쪽)-'제주 삼양탁구동호회장' 장은석조가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우리 아들 꿈이 경륜선수, 조호성 선수가 롤모델이었어요."

제1회 인천전국어울림생활체육대축전 탁구 경기가 한창인 지난 4일 인천 남동체육관, 어느새 늠름한 청년이 된 아들의 왼손 서브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어머니 장정아씨가 오래 전 그날 이야기를 털어놨다. 맏아들 김대겸씨(28)는 사이클 유망주였다. 2011년, 고2 때 제주 전지훈련 중 교통사고로 뇌병변 1급 장애인이 됐다. 아들은 6년여의 투병, 수십 번의 수술과 재활을 오뚝이처럼 견뎌냈다. 2014년부터 시작한 탁구는 인생의 활력소가 됐다. 오른쪽 신경이 마비됐지만 매일 4시간씩 동료들과 땀을 흘린다. 휠체어에 앉은 채 왼손으로 탁구를 친다. 왼손으로 탁구공을 들어올려 날리는 날선 서브는 8년 노력의 결실이다. 선수 출신답게 승부욕과 운동 DNA는 그대로다. 어머니 장씨는 "우리 아들이 6개월간 중환자실에 있었다. 심장마비가 10번이나 왔는데도 그때마다 살아났다. 의사선생님들이 사이클 선수라 심폐기능이 좋아서 그렇다고 하시더라"고 했다. "병원생활을 6년이나 한 것치고 회복도 빠르다. 우리 아들은 매사에 밝고 긍정적"이라며 웃었다. 사이클 선수 출신의 멘탈과 회복 탄력성은 확실히 달랐다.

6년 전 장씨 가족은 아들의 뜻에 따라 제주행을 택했다. 그곳에서 탁구의 꿈이 시작됐다. 부단한 노력 끝에 제주시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 내 제주등대장애인탁구클럽(회원 50명)의 대표 에이스가 됐다.


4일 제1회 인천 전국어울림생활체육대축전 남자탁구 휠체어 어울림 복식조롤 나서 동메달을 딴 '사이클 꿈나무' 출신 김대겸-'제주 삼양탁구동호회장' 장은석조.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이날 인천에서 국내 최초로 열린 전국 규모의 어울림대축전, 김씨는 사고 이후 첫 대회에 나섰다. 올해 초 등대탁구클럽과 자매결연을 맺은 삼양탁구동호회(회원 80명) 장은석 회장(48·제주시탁구협회 시설이사)이 환상의 복식 파트너. 이날 경기는 남녀 스탠딩 복식, 휠체어 복식 4종목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비장애인 동호인 선수와 장애인 동호인 선수가 짝을 맞춰 나서는 '어울림' 복식 경기, 9개 시도 총 26개팀 52명이 참가했다. 남자 스탠딩, 휠체어 복식에 각 9팀, 여자 스탠딩, 휠체어 복식에 각 6개팀이 나섰다. 장 회장은 "1승이 목표다. 제주서 힘들게 왔는데 그냥 집에 갈 순 없다"고 했다. 사이클 선수와 회장님 '환상의 복식조'는 승승장구했다.



인천 전국어울림생활체육대축전 남자탁구 동메달 장은석-김대겸조.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첫 예선전, '대겸씨'의 왼손 서브, '회장님'의 오른손 드라이브가 맞아들었다. 소문난 에이스조를 꺾고 2승을 거두며 당당히 4강에 진출, 동메달을 확보했다. 4강에서 '경남 에이스' 정영수-이한원조를 만나 게임스코어 0대3으로 패했다. 아쉬움 가득한 표정,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1승이 목표였는데 동메달 땄잖아. 첫 대회치고 우리 엄청 잘한 거야." '큰형님' 장 회장의 말에 김씨가 활짝 웃었다.

휠체어에 앉아 치는 김씨와 서서 치는 '회장님'의 타점이 달라 처음엔 어려움도 있었지만, 서로에게 적응하는 과정 역시 '어울림'이고 '배움'이었다. 장 회장은 "타점과 궤적이 다르다보니 대겸이의 라켓에 입술을 맞아 피가 좀 났다"면서 "피를 본 덕에 동메달을 딴 것"이라며 유쾌한 농담을 던졌다. 탁구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 장 회장은 "어울림"이라고 답했다. "탁구는 남녀노소, 장애, 비장애인 상관 없이 누구나 어울려 함께 즐길 수 있다." 김씨는 "탁구는 인생의 100%, 그냥 너무너무 좋다"며 웃었다. '활동보조 선생님' 김영혜씨는 "대겸이는 혼신의 힘을 다해 탁구를 친다. 복지관 출근시간이 아침 9시인데 8시부터 탁구대를 펼친다고 난리가 난다"면서 "제주도에선 이미 유명인사다. 장애인식 개선 캠페인 광고도 찍고, 지역 민방 뉴스에도 나왔다"고 했다.

장 회장은 "경기 전 대겸이와 약속한 게, 포인트를 따면 '화이팅!', 잃으면 '스마일'하기로 했는데 '화이팅'만 외치다가 왔다. 지고 나면 '스마일'이 절대 안되더라"고 했다. 지고는 못사는 '대겸씨' 역시 공감의 웃음으로 화답했다.


올해초 제주도 비장애인 탁구클럽 삼양탁구동호회와 등대장애인탁구클럽이 자매결연을 맺었다. 장은석 삼양탁구동호회장과 '등대 에이스' 김대겸씨가 이번 인천 어울림생활체육대축전에서 처음으로 손발을 맞춰 동메달을 따냈다. 왼쪽부터 장은석 회장, 김대겸씨, 이봉주 등대장애인탁구클럽 회장.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잘했어! 아들." 사이클 유망주 김대겸씨의 새로운 탁구 도전을 이끈 김영혜 복지사(활동보조인, 왼쪽)와 어머니 장정아씨가 대겸씨의 동메달 후 환하게 웃으며 기뻐하는 모습.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사고 후에도 사이클이 너무 좋아 자전거 바퀴만 봐도 차를 멈춰 세운다는 김씨는 동료 장애인들에게 "스포츠를 통해 밖으로 나오시길 바란다. 밖으로 나오면 행복해진다는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장 회장 역시 "장애인-비장애인 어울림 대회에 나와보니 너무 좋다. 첫 대회라 참가팀이 예상보다 적어 아쉽다. 어울림 탁구도 치다 보면 절로 요령이 생긴다. 너무 재미있다. 내년엔 더 많은 탁구 동호인들이 출전하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

이날 생애 첫 전국대회 동메달은 김씨에게 강력한 자극제가 됐다. 오래 전 경륜선수를 꿈꿨던 그에게 새 목표가 생겼다. "더 많은 대회에 도전해 보고 싶다. 제주도내 대회만 1년에 4번 정도 해봤는데 더 열심히 해서 전국장애인체전에도 나가보고 싶다"며 눈을 빛냈다. '환상의 파트너' 장 회장 역시 꿈이 생겼다. "대겸이하고 약속했다. 내년에도 꼭 같이 나오자고. 첫 대회 4강 갔으니 내년엔 우승하자고 했다"며 하하 웃었다. "손발을 더 잘 맞춰서 '어울림 남자 휠체어복식 최강조'에 도전하겠다." 스무 살 차이, 선한 눈매가 똑 닮은 동메달 복식조의 하이파이브가 훈훈했다.
인천=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제1회 인천 전국어울림생활체육대축전 탁구 경기결과]

◇어울림 스탠딩 남자복식

1위 김좌오-김상진(충남) 2위 정지호-황성용(경북) 3위 정선교-최석준(강원)/최문환-신재승(인천)

◇어울림 휠체어 남자복식

1위 정상구-임원규(경북) 2위 정영수-이한원(경남) 3위 김대겸-장은석(제주) 김창휘-이철희(광주)

◇어울림 스탠딩 여자복식

1위 박수현-배주현(울산) 2위 유보라-박덕화(충남) 3위 강봉임-한은숙(강원)

◇어울림 휠체어 여자복식

1위 최순자-김민지(경남) 2위 맹분호-정은종(광주) 3위 김미옥-류은혜(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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