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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우리는 하나다]평양 옥류관 10년경력 셰프의 '랭면', 직접 먹어본 그맛은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8-08-22 05:30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그랑 멜리아 호텔에 위치한 북한 올림픽회관에서 북한 안내원이 옥류관 냉면을 선보이고 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18.08.20/

"이것이 바로 우리 민족이 랭면을 먹는 방법입네다."

적도의 나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랭면'을 먹었다. 사실 글로벌 시대라 자카르타 시내에는 한국 음식점이 상당히 많다. 번화가 백화점에는 한국의 유명 갈빗집 지점이 입점해 있다. 자카르타에서 '냉면'을 먹는다는 건 생갭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기자가 먹은 건 '랭면'이었다. 그것도 평양 옥류관에서 10년간 랭면을 만든 셰프가 평양에서 공수한 재료들로 직접 만든 정통 북한식 '랭면'이었다. 두음법칙의 적용을 받지 않는 명칭 말고도 서울식 '평양냉면'과 많이 달랐다.

이북 피난민 출신 조부모와 외조부모를 둔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30년이 넘게 다양한 냉면을 접해 온 기자에게 평양에서 건너온 '랭면'과의 만남은 신선하고도 감격적인 경험이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그랑 멜리아 호텔에 위치한 북한 올림픽회관의 옥류관 냉명
자카르타(인도네시아)=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18.08.20/
어서 와 '국수' 한 그릇 하시라요

지난 20일 오후 자카르타 그랑멜리아 호텔 1층에 마련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올림픽회관'을 방문했다. 선수단과 관계자들을 위해 마련된 장소다. 대한체육회가 만든 '코리아하우스'의 반대 개념으로 보면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곳에서 '옥류관 랭면'을 겨우 5달러(약 5600원)에 먹을 수 있다는 소식에 귀가 번쩍했다. 평소에도 '냉면'이라는 말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인데, 심지어 '옥류관 랭면'이라니. '냉면 좀 먹는다'는 이들에게는 초희귀 레어템이 아니던가.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오전에 여자농구 단일팀의 인도전 대승을 타전하자마자 택시를 탔다.

북한 올림픽회관에 들어선 시간은 오후 2시쯤. 평양에서 현장 관리로 파견된 북한 사람들은 친절했다. 하지만 "재료가 아마 떨어졌을텐데, 아직 평양에서 물건들이 다 도착하지 않아서…"라며 랭면 주문에 살짝 난색을 표했다. 이미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것이다. 난감했다. 이걸 어쩐다.


그때였다. 선객이 미리 주문한 랭면이 나왔다. 예상대로 겉모양부터 달랐다. 군침만 흘리던 찰나, 북한 사람들이 "우리는 만날 먹는 국수니까, 이거 먼저 드시라요"라며 그릇을 양보했다. 예의상 '두 번' 사양하고 세 번째 얼른 그릇을 받았다. 외조부 덕분에 냉면을 '국수'라고 부르는 건 익숙하다. 북한 사람들은 '랭면'과 '국수'라는 명칭을 혼용한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그랑 멜리아 호텔에 위치한 북한 올림픽회관의 옥류관 냉명
자카르타(인도네시아)=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18.08.20/
강렬하고 진했던 닭-쇠고기 육수

본격적으로 시식에 들어갔다. '두 번' 양보하는 사이 북한 사람들이 직접 고명을 내리고 식초를 뿌린 뒤 사리까지 육수에 풀어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감사했지만 서운했다. 고명과 사리를 풀지 않고 육수부터 두 세 모금 들이키는 나름의 루틴을 잃었기 때문. 특히나 북한식 평양랭면에는 양념장이 들어가 있는데, 이게 육수에 전부 풀려버렸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은 금세 가셨다. 한 그릇을 게눈 감추듯 먹은 다음에 곧바로 새 랭면이 한 그릇 더 나온 덕분이다. 다행히 재료가 조금 넉넉히 남아있었다고 한다. 두 번째 기회는 놓치지 않으리라. 생수로 입을 가시고 이번에는 '루틴대로' 육수를 마셨다.

쇠고기 육수의 진한 맛, 염도는 다소 강하다. 육수에 기름이 적고, 뒷맛이 깔끔한 건 닭을 함께 삶았기 때문이다. 혀에 오래 남는 맛은 적었다. 이유를 묻자 림옥경(32) 요리사가 말했다. "원래는 쇠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로 육수를 내야 맞습니다만, 여기가 무슬림의 나라이기 때문에 현지 인민 사정을 고려해서 돼지고기는 빼고 육수를 만들었습니다."

그랬다. 이 랭면은 옥류관 랭면을 자카르타 현지 사정에 맞게 변용한 '자카르타식 평양랭면'이었던 것이다. 림 요리사는 "모든 재료를 평양에서 공수해 와 만드는 데 아무래도 물맛도 다르고, 여기 사정도 있으니 완전히 똑같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전통의 맛을 살렸습니다"라며 대단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그랑 멜리아 호텔에 위치한 북한 올림픽회관에서 옥류관 냉면을 만드는 림옥경(32) 주방장
자카르타(인도네시아)=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18.08.20/
고명의 정석, 그리고 문제의 양념장

육수를 들이킨 뒤 찬찬히 고명의 배합을 살폈다. 무 김치를 얇게 저며 면 위에 우선 깔고 양념장을 듬뿍 둘렀다. 이어 손으로 찢은 닭고기가 듬뿍, 쇠고기 편육 세 점이 올라간 뒤 편으로 썬 오이 서너 점 위로 계란 지단으로 마무리. 마치 실처럼 가는 지단의 두께에서 요리사의 세심한 손길이 느껴진다. 더할 나위 없는 '고명의 정석'이었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알려진 뒤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역시 '양념장'이다. 서울의 내로라하는 평양냉면 집은 맑디 맑은 육수와 메밀 함량이 높은 면을 특징으로 한다. 그 심심한 맛 때문에 냉면을 외면하는 사람도 많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 현재 서울식 평양냉면의 트렌드다. 그러나 옥류관식 평양랭면에는 양념장이 있다. 원래는 취향에 맞게 퍼서 넣는데 이번에는 아예 포함돼 있었다. 걱정할 것 없다. 싫으면 육수에 풀지않고 덜어내면 되니까.

간장과 고춧가루, 다진 파와 미량의 다진 마늘, 깨 등이 들어간 양념장은 비빔냉면 양념장과는 완전히 다르다. 단 맛은 없고, 칼칼한 뒷맛이 강했다. 림 요리사는 "양념장은 꼭 다 안 넣어도 되지만, 그래도 같이 먹으면 맛이 참 좋습니다"라고 했다.

탄력이 강했던 중면의 유혹

면은 남북정상회담 때 화면에 나온 것보다는 밝은 색이었다. 굵기는 마포 을밀대보다는 가늘지만, 을지·필동 등 의정부 평양냉면 계열의 면발보다는 확실히 굵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정인면옥이나 봉피양 순면 정도의 중면이다.

육수가 면에 좀 스며든 뒤에 먹는 걸 즐기는 편인데, 이미 테이블에 나올 때 충분히 면에 육수를 머금은 상태였다. '불은 면'과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탄력은 살아있었다. 그러나 요즘 인기 있는 '뚝뚝 끊어지는' 면과는 전혀 다르다. 젓가락으로 올리면 살짝 늘어나 무게감이 느껴지는 정도의 탄력이었다. 림 요리사는 "원래 직접 반죽을 치대고 면을 뽑아야 하는데, 여기는 면 뽑는 기계가 없다보니까 평양에서 가져온 면을 썼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정말 겨자, 식초를 안넣습니까?"

두 그릇을 바닥까지 비운 뒤 음식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반응이 궁금해 일부러 물었다. "서울에서는 일부러 겨자와 식초를 안 넣고 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평양도 그럽니까?" 림 요리사는 깜짝 놀랐다. "아니 그건 우리 민족식이 아닌데, 왜 안넣습니까. 아직 평양에서 겨자가 안와서 오늘은 식탁에 없었지만, 원래 같이 넣어 먹어야 진짜 맛이 납니다."

그런 차이다. 어차피 맛이야 각자 느끼기 나름. '정통'이 있다고 하나 그 걸 꼭 지켜야만 잘 먹는 건 아니다. 어떻게든 각자가 가장 만족스럽게 먹으면 그만인 것이다. 두 그릇의 랭면을 비운 뒤 말했다. "겨자 넣고 먹으러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마치 단골 냉면집 사장님께 하는 것처럼. 잠시 후에야 아차 싶었다. 여기는 자카르타, 그리고 북한의 영역이었다. '옥류관식 평양랭면'의 맛에 너무 취해버린 것이다.


자카르타(인도네ㄴ시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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