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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밤 9시 30분, 윤성빈(23·강원도청)은 요란한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시 윤성빈이 다니던 서울 신림고 체육교사이자 서울시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이사였던 김영태 선생님이었다. "성빈아, 내일 서울체고로 와라." 뜬금 없는 체육선생님의 제안에 윤성빈은 영문도 모르고 "네"라고 대답했다. '천운'의 시작이었다.
강 교수도 최선을 다해 지도했다. 주말이면 자신이 지도하던 강원도청으로 데려가 과외도 시켰다. 그러자 조금씩 가능성이 높아지더니 2012년 9월 잠재력이 폭발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썰매 훈련을 받은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시점, '스켈레톤 천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그는 국제 무대에서 '신성'으로 불렸다. 주니어 신분이던 2014~2015시즌 월드컵 2차 대회부터 3위를 찍으며 세계 스켈레톤계에 충격을 던진 윤성빈은 월드컵 5차 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거는 파란을 일으켰다. 2014년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소치동계올림픽에선 16위에 그쳤지만 성인이 된 2015~2016시즌에는 '스켈레톤계 우사인 볼트'로 불리던 마르틴스 두쿠르스(34·라트비아)도 한 차례 넘었다. 2016년 2월 6일 썰매 종목이 탄생한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펼쳐진 월드컵 7차 대회에서 생애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2016~2017시즌에도 좀처럼 두쿠르스와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던 윤성빈은 올림픽 시즌인 2017~2018시즌 드디어 '황제' 타이틀을 거머쥐는데 성공했다. 6차례 월드컵에서 4차례나 시상대 맨 꼭대기에 섰다. 두쿠르스의 우승은 그 절반인 두 차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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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빈의 체형은 스켈레톤에 최적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리가 길지 않은데 팔이 길다. 긴 허리를 숙여 긴 팔로 썰매를 잡고 스타트를 하기 때문에 최대 파워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스켈레톤 전문가의 분석이다. 여기에 63㎝(24.8인치), 일반 여성의 허리 둘레와 맞먹는 허벅지 두께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스퍼트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5월부터 매일 두 시간여의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하체를 단련한 결과다. 또 윗몸일으키기를 1000개씩 하며 단련된 근력으로 체중이 10㎏ 늘어난 것도 중력가속도를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달리기는 빠르지 않지만 타고난 순발력에 스타트가 윤성빈의 몸에 맞게 적응되면서 경기력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강력한 스타트를 보유하게 된 것이 윤성빈의 피지컬적인 장점이다.
세계 최강 코치와이 만남 속에 피어난 주행능력
봅슬레이에 '우승 청부사' 피에르 루더스 코치(48·캐나다)가 있다면 윤성빈의 옆에는 리처드 브롬리 코치(42·영국)가 있다. 2015년부터 윤성빈을 지도한 브롬리 코치는 쑥쑥 성장하는 윤성빈을 지켜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특히 세계 3대 썰매 제조사 중 하나인 영국 '브롬리'사를 운영하고 있는 브롬리 코치는 윤성빈의 몸에 딱 맞는 썰매를 직접 제작했다. 0.01초 기록 싸움인 스켈레톤에서 썰매의 성능은 메달 색을 바꾸는 중요한 요소다. 덕분에 구형 썰매와 신형 브롬리 썰매를 번갈아 타면서 윤성빈의 성적도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정상에 설 수밖에 없는 시기
윤성빈은 스켈레톤 선수로 활약한 지 6년이 됐다. 사실 스켈레톤은 운동신경이 좋은 선수들이 4~5년 정도 되면 최고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종목으로 평가된다. 이젠 세계적인 스타트에다 안정된 주행기술까지 보유한 윤성빈이 10살 많은 두쿠르스를 제치고 정상에 설 수 있는 시기가 도래했다.
다만 윤성빈의 폭풍 성장에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무시할 수 없다. 평창 올림픽 유치 전까지 국내에서는 훈련할 여건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다.
강 교수는 "2008년에 윤성빈을 뽑았으면 이렇게까지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이 올림픽을 유치하고 나서 정부에서 전폭 지원이 있었다.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이 개선됐다. 국가대표가 되자마자 1년6개월 정도 해외 전지훈련을 할 수 있었다. 최고의 조건에 윤성빈이 발탁이 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