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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시니어 무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10년 처음으로 도전한 3번의 월드컵에서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그해 열린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개인종합 동메달을 거머쥐기도 했지만, 유럽 선수들과의 경쟁에서는 늘 열세였다. 손연재는 2011년 리듬체조 강국 러시아로 향했다. 그곳에서 손연재는 그저 '이방인'일 뿐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눈칫밥을 먹어가며 독하게 버텼다.
결실은 달콤했다. 2011년 9월 프랑스 몽펠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개인종합 11위에 오르며 자력으로 2012년 런던올림픽 본선에 진출했다. 런던에서도 결선 무대에서 5위를 기록하며 한국 리듬 체조 최고 성적을 냈다. 분위기를 탄 손연재는 2013년 아시아 선수권,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2015년 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 연달아 정상에 오르며 환호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도 한국 최고인 개인종합 4위에 이름을 올리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새 출발에 나서는 손연재는 대학에 복학했다. 그는 "올림픽 시즌 때 운동에 집중하기 위해 1년 정도 휴학했다. 지금은 복학했다. 이제는 선수가 아닌 학생으로서 학업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더 많이 찾아보고 경험하고 싶다. 저에게 더 잘 맞고, 좋아하는 것을 할 생각이다. 새롭게 만날 나날을 준비하겠다"고 환하게 웃어보였다.
다음은 손연재 은퇴식 일문일답.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은퇴 소감
적어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연재입니다. 제가 리듬체조 선수로 살아온 17년입니다. 5살 때 시작한 리듬체조는 제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리듬체조 선수 손연재가 아닌 24살 손연재로 돌아가려 합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부터 2016년 리우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쉬움과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습니다. 아쉬움과 후회는 가장 두려운 단어였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왔고, 그 결과 저는 감사하게도 아쉬움과 후회는 남기지 않았습니다. 리듬체조를 통해 많이 보고 배웠습니다. 지겨운 일상을 겪으면서 노력은 어떤 형태로도 돌아온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누구보다 제 자신을 믿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은은하지만 단단한 사람이, 화려하지 않아도 꽉 찬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제 인생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제는 제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 하면서 제가 만나게 될 나날들을 준비하려 합니다. 이번 올림픽은 제 자신에게 줄 수 있었던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리듬체조 선수로서 받았던 사랑과 관심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수인 저를 응원하고 지켜봐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더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무엇인가.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이었는데요, 메달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하나로 경기에 임했습니다. 개인종합 메달을 목에 걸 때 제가 시니어로서 시작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리우올림픽 무대가 제가 가장 뜻깊고 의미 있었습니다. 리듬체조 17년의 기억을 제가 돌이켜 봤을 때 행복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해줬습니다.
-은퇴 후 계획 및 10년 뒤 손연재의 모습을 상상하면 어떤가.
올림픽 시즌 때 운동에 집중하기 위해 1년 정도 휴학했다. 지금은 복학했다. 이제는 선수가 아닌 학생으로서 학업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이제는 선수가 아니지만 리듬체조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 좋은 선수들이 저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고 국제 무대에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무엇인가.
마지막에 아시아선수권을 하면서 운동하면서 매번 운동 일지를 쓴 것이 한 번쯤 애국가를 들어보고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아시아선수권에서 애국가 5번을 들을 수 있어서 자랑스러웠고 행복했다.
-은퇴 생각하게 된 계기 및 시기는 언제인가
리듬체조 선수 은퇴 시기가 20~23살이다. 다른 종목보다 은퇴 시기가 빠르다. 5살 때부터 시작했기에 리듬체조를 뺀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리듬체조 선수였던 기억이 평생 있다. 어느 정도 은퇴시기를 생각했기에 갑작스러운 결정은 아니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직후 은퇴를 생각했다. 그래도 두 번째 올림픽 무대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보자고 생각해서 2년 동안 천천히 은퇴를 준비했다. 정말 후회 없이 모든 것을 쏟아내기 위해 훈련하고 경기했다.
-악플에 마음을 다스린 방법은 무엇인가.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안 좋은 시선이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때마다 내가 더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성적으로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 시선에도 감사하다. 그 덕분에 더 노력해서 실력으로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안 좋은 시선도 있었지만, 선수로서 정말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많은 힘을 받았고, 정말 많은 사람이 나를 응원하고 지켜봐준다는 생각에 책임감이 생겼다.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지도자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무엇인가
아직은 학부생이고 학교를 다니는 상황에서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24살이고 또래 친구들도 진로를 고민하는 나이인 것 같다. 나도 같은 상황이다. 지금까지 리듬체조를 하면서 운동 외적인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가 적었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더 많이 찾아보고 경험하고 싶다. 저에게 더 잘 맞고, 좋아하는 것을 할 생각이다.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많이 도와주고 싶다. 러시아에서 세계 최고 선수들과 함께 6년 정도 함께 훈련했다. 그 시스템을 한국 선수들도 할 수 있도록 알려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도입하고 싶은 시스템은 무엇인가.
선수들이 경기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출전을 하면서 기량 향상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이 적어서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대회가 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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