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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에서의 영광은 잊었다. 이제는 평창이다.
금빛 레이스를 마친 태극전사들. 삿포로에서 '환희의 역사'를 쓴 선수들은 이제 1년 앞으로 다가온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향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4개를 싹쓸이 한 '스피드스케이팅 간판' 이승훈(29)은 "지금의 이 기세를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뿐만 아니라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스피드스케이팅 1500m에서 깜짝 금메달을 거머쥔 '기대주' 김민석(18)은 "평창에서 메달권에 진입하려면 1500m에서 1분44초대의 기록을 내야 한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키엘트 누이스(네덜란드)를 목표로 삼고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한국 스노보드 사상 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이상호(22)는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옛날에 배추밭에서 스노보드를 타던 게 생각났다"며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고 활짝 웃었다.
'쇼트트랙 쌍두마차' 심석희(20)와 최민정(19) 역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심석희와 최민정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3개를 합작했지만, 중국의 이른바 '나쁜 손'의 방해로 억울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둘은 "큰 대회를 앞두고 많은 것을 배웠다"며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아예 부딪침 없이 확실히 추월한다면 여지를 주지 않고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금빛 질주… 투자는 필수
선수들의 금빛 질주 뒤에는 통 큰 투자가 있었다. 대표적인 예는 스노보드다. 한국 스노보드는 이번 대회에서만 금은동 각각 2개씩 거머쥐었다. '2관왕' 이상호는 "지원이 늘면서 성적이 잘 나온 것 같다. 코치님과의 호흡도 좋아졌다"며 "한국인 코치님은 대표팀 선수들의 성격 등에 대해 세세히 잘 알기 때문에 컨트롤을 잘 해주신다. 반면 외국인 코치는 경험이나 기술에서 힘을 준다"고 말했다. 대한스키협회 회장사인 롯데그룹은 설상 종목에 아낌없이 투자해 이상호의 훈련을 도왔다. 과거 코치 1명이 선수 5~6명을 가르치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5명의 코치가 팀으로 움직이며 체계적인 훈련을 돕는다.
일본 스피드스케이팅의 약진도 눈여겨볼만 하다. 일본은 여자 500m의 고다이라 나오는 물론이고 여자 매스스타트의 다카기 미호, 사토 아야노 등의 선전이 눈부셨다. 특히 일본은 매스스타트에서 이른바 '작전'을 통해 김보름(24)의 질주를 막는 전략을 선보이기도 했다. 일본의 한 기자는 "일본은 올림픽을 앞두고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며 "스피드스케이팅의 경우 네덜란드 코치를 영입했고, 합숙 훈련을 하는 등 많은 변화를 줬다"고 전했다. 일본의 스피드스케이팅 코치 역시 "우리는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 뒤에 연맹의 지원이 늘었다"고 말했다.
삿포로의 교훈, 평창을 밝힌다
평창을 향해 달리는 것은 선수들만의 얘기는 아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평창조직위원회 역시 삿포로에서 많은 교훈을 얻고 돌아갔다. 삿포로는 1972년 동계올림픽을 비롯해 동계아시안게임도 세 번이나 치른 도시다. 실제 이번 대회에서는 1972년 사용한 건물을 7개나 활용했다. 공식 경기가 열린 건물이 12개인 것을 감안하면 절반이 넘는 것을 재활용한 셈이다. 시설은 좁고 낡은 면이 있었지만, 40년 넘게 유지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사후 활용도 배울만하다. 스키 경기가 열린 삿포로 데이네의 하세가와 관리자는 "이곳은 오직 겨울에만 문을 연다. 주민들의 스키 강습 교실로 활용된다. 중국, 말레이시아는 물론이고 유럽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며 "여름에는 골프장을 개방해 관광객을 모은다"고 말했다.
다만, 노후한 건물과 1970년대식 경기 운영 방식은 불편을 낳았다. 아이스하키 경기가 펼쳐진 쓰키사무 경기장은 난방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관중들이 추위에 떨기도 했다. 홍보도 부족했다. 김현환 일본 한국문화원장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도쿄에서는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광고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며 "홍보 및 지원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교도통신의 유미코 기자 역시 "일본 기자, 관계자, 봉사자들 모두 대회 운영이 미숙했다는 평가를 한다"고 전했다.
유동훈 문체부 제2 차관은 "큰 대회를 치르는 디테일을 보기 위해 삿포로에 왔다. 그러나 생갭다 아쉬움이 남는다"며 "이번 대회를 통해 우리가 더 채워야 할 디테일을 느끼고 간다"고 말했다. 이희범 평창조직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이곳에 와보니 강릉을 찾았던 한 외국인 선수가 택시 잡기 어렵다는 얘기를 한 것이 생각났다"며 "이런 작은 것까지 채워야 할 것이 많다"고 했다.
삿포로에서 최상의 '모의고사'를 치른 평창동계올림픽은 이제 1년 앞을 바라본다. 더 밝은 내일을 꿈꾸는 태극전사들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한국의 발걸음도 바빠지고 있다. 삿포로의 영광이 평창을 비추기 시작했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