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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선수]박태환"첫수업`멘붕` 딛고 공부병행하는 이유"

기사입력 2013-09-26 18:01 | 최종수정 2013-09-27 08:20

박태환
수영 국가대표 박태환 인터뷰. 2013.07.16. 개포동=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진짜 열심히 공부하는 선수도 많은데…."

박태환은 '공부하는 선수, 운동하는 학생' 인터뷰 요청에 난색을 표했다. 박태환은 런던올림픽 직후 학업 병행을 선언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틈틈이 정상적인 대학원 수업을 받겠다고 결정했다. 초등학교 이후, 하루 8시간 이상 운동에만 '올인'해온 현역 엘리트 선수로는 파격적인 결심이었다. 지난 여름 호주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까지 물살을 가르는 틈틈이 일주일에 2번씩 단국대 대학원에서 수업을 들었다. 100% 출석도, 타고난 학구파도 아니지만 '수영영웅' 박태환의 학업 병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공부를 망설이거나 두려워하는 동료, 후배들에게 힘이 될 것이라는 설득이 통했다. 박태환이 지난 1년간 강의실에서 직접 경험한 '공부'에 대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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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국가대표 박태환 인터뷰. 2013.07.16. 개포동=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대학원 첫수업에서 맛본 좌절감

"아, 나 바보인가봐." 박태환은 단국대 대학원 첫 수업을 다녀온 직후 가족들에게 극도의 좌절감을 토로했다. 시쳇말로 '멘붕(멘탈붕괴)'이었다. 런던올림픽이 끝나고 박태환은 공부를 결심했다. 4주 군사훈련에서 만난 고려대 출신 분대장 전우에게 자극도 받았다. 그러나 호기롭게 맞닥뜨린 대학원 수업은 녹록지 않았다. 영어로 된 전문용어가 난무했다. 초등학교 이후 수영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대한민국 1등에서 세계 1등까지 평생 '이기는 법'만 알아온 박태환에게 교실은 시련이었다. "솔직히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첫수업은 멍하니 앉아 있다 왔다." 지고는 못사는 '선수'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심지어 '세계 1등' '올림픽 챔피언' 박태환이다. 모두가 알아보는 유명선수의 신분이 때론 공부에 걸림돌이 된다. 남들 앞에서 부족한 부분을 꺼내보이기가 쉽지 않았다. 낯가림이 심한 박태환은 "잘 모르는 게 있더라도 창피해서, 첫 수업부터 주위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 했다.

눈높이 맞춤형 수업, 포기는 없다

박태환은 2011년 단국대 체육교육학과 졸업반 때 단국공고에서 교생실습을 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에 대해 매력을 느낀 계기가 됐다. 자신의 한마디에 어린 학생들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선수 이후 교수의 꿈을 꾸게 됐다. 첫단계부터 시련에 부딪쳤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눈높이를 조정했다. "교수라는 결과만 생각했다. 막상 해보니 과정이 너무 어렵더라. 목표를 지나치게 높게 잡고 시작하면 포기해버릴 것 같아서, 수영선수로서 공부에 익숙해지는 단계로 생각하기로 했다."

매주 화요일, 목요일 수업에 출석했다. 좌절감에 빠진 박태환에게 김기홍 단국대 교수가 '멘토'를 자청했다. 박태환과 김 교수의 인연은 특별하다. 김 교수는 2007년 멜버른세계선수권 우승 이후 2009년 로마세계선수권까지 박태환의 트레이너였다.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던 박사 출신의 트레이너와 '사제지간'으로 재회했다.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아는 선생님은 낯선 강의실에서 '천군만마'가 됐다. 강의, 인생, 운동, 공부 등 다양한 고민을 함께 나눴다. 일부 교수들은 일부러 박태환을 강하게 단련했다. 숙제는 무조건 컴퓨터 대신 자필로 써오라고 했다. 자필로 종이를 가득 메우는 과정을 충실히 해냈다. "처음에는 모든 수업이 다 어려웠는데, 여가론, 운동생리학처럼 스포츠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수업은 듣다 보니 저절로 맥이 잡히더라"고 했다. 몇몇 과목에 흥미를 느끼게 되면서 막막함과 두려움도 서서히 사라졌다. 손석배 박태환 전담팀 지원팀장은 "성적이 꽤 괜찮다. 대부분 A였고, B+가 하나였다"고 귀띔했다.

박태환의 도전 '공부하는 선수'


박태환이 수영과 학업을 병행하기로 한 이후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아버지 박인호씨는 "'수영에만 올인해야 한다. 공부와 수영을 병행하면, 후원사도 안생길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성적에만 집착하는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의 세계에서 공부를 병행하는 일은 분명 '도전'이었다. 박태환은 '공부하는 선수'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아버지 박씨는 "원래 가족들은 로마세계선수권 직후 공부를 시작하기를 권했다. 태환이가 명예회복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다시 수영에 올인했다. 공부를 병행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태환이도, 가족들도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선수 이후 걸어가야할 긴 인생의 길을 한발 앞서 준비하고 있다. 박태환은 방학 직후인 7월 19일 호주 브리즈번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마이클 볼 감독과 함께 수영에만 전념하고 있다. "아시안게임 이후에도 계속 학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27일 스물네살 생일을 맞은 박태환은 생각도 훌쩍 자랐다. 강의실, 수영장을 오가며 깨달은 바도 많다.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 생각도 더 많이 하고, 더 많이 배워야 한다."

'공부하는 선수' 박태환은 인천전국체전을 위해 내달 12일 귀국한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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