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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5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 랜더스와 LG 트윈스의 경기.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LG 마무리 고우석이 SSG 4번 타자 최 정과의 맞대결에서 트레이드 마크인 시속 150㎞대 패스트볼 대신 슬라이더만 6개 연속으로 던져 삼진을 잡아냈다.
2-1로 SSG가 1점 리드하고 있던 8회말.
추가실점이 치명적이었던 LG는 뒤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클로저 고우석을 투입했다. 하지만 SSG는 1사 후 최주환의 2루타로 추가득점 찬스를 만들었다.
타석에는 강타자 최 정. 마스크를 쓴 허도환에게는 약 3주 전 아쉬웠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이 전(9월 7일) 최 정과의 대결에서 (고)우석이가 홈런을 맞았잖아요. 그래서 큰 것 한방을 맞고 싶지 않아서 낮게 던질 수 있는 슬라이더를 선택했어요. 볼넷이 돼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허도환의 슬라이더의 사인을 본 마운드상의 고우석은 의도를 바로 이해했다. "만약에 (볼넷으로) 1루를 채워도 더 쉬운 상황(후속타자 병살타 유도 등)으로 갈 수 있으니까 슬라이더를 잘 던져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LG 배터리는 볼넷이라도 괜찮다고 해서 선택한 슬라이더였지만 그 날 고우석이 던진 140㎞ 중후반의 슬라이더는 스트라이크존에서 아래도 잘 휘어져 떨어졌다. 최 정이 2구 연속 스윙해 투 스트라이크가 됐다.
그 상황에 대해 최 정은 "계속 좋은 볼이 오니까 배트가 나가 버렸다" 며 고우석의 슬라이더 구종 가치를 인정했다.
허도환은 "슬라이더가 바깥쪽으로 가면 맞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해 3구째도 슬라이더의 사인을 냈다. 고우석은 허도환의 요구대로 던졌는데 최 정이 배트를 내지 않아 볼이 됐다.
볼카운트 1B-2S가 되면서 긴장감이 넘치는 상황이 이어졌다. 절체절명의 순간, 최 정과 허도환은 서로 얼굴을 보며 웃고 있었다.
허도환은 "배트가 나와야 되는 진짜 나이스 볼였는데 어떻게 참았지? 라는 의미로 (최)정이를 봤고, 본인도 잘 참은 걸 아니까 웃어 버렸지요. 야구선수로서 눈으로 대화한 거지요" 라고 했다. 최 정도 같은 이유로 웃었다고 말했다. 잠시나마 긴장감이 풀렸던 순간.
4구째 슬라이더는 원바운드 볼. 5구째의 슬라이더는 몸쪽으로 빠졌고, 파울이 됐다.
2B-2S에서 6구째를 던지기 직전.
허도환이 처음으로 바깥쪽 직구 사인을 냈다. 하지만 고우석은 고개를 흔들며 다른 구종을 원했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고우석은 "5구째 슬라이더가 의도치 않게 몸쪽으로 빠지고 파울볼이 되면서 타이밍을 빼앗았습니다. 교란이 좀 됐다고 해서 같은 공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 슬라이더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고우석의 의도대로 6구째는 낮은 코스에 슬라이더가 잘 들어가서 최 정은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최 정은 이 대결에 대해 "좋은 볼 배합이었어요. 제가 수 싸움으로 진 거지요"라고 회고했다. 한편 허도환은 "잘 치는 위대한 타자를 막아낸 것은 우석이에게 큰 자신감이 됐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한편, 고우석은 "이전에 직구를 맞았으니까 변화구로 승부한 게 아니라 직구를 쓰는 타이밍을 찾으며 던진 결과 다 변화구 승부가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여러 배경 속에 이뤄진 고우석의 6구 연속 슬라이더 승부. 다음에 최 정을 다시 만났을 때 같은 과정으로 같은 결과를 낼 수 없을 것이다. 과연 둘 간의 맞대결을 한국시리즈에서 볼 수 있을까.
<무로이 마사야 일본어판 한국프로야구 가이드북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