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장 속 할머니 간식과 장롱 속 할머니 옷들이 MZ세대를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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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것'이 품은 건강한 맛은 코로나19 이후 '몸에 좋은 것'을 찾아나선 젊은이들의 입맛을 저격했다. '맵고 짜고 단' 자극적인 맛 대신 담백하고 구수한 간식들이 대세가 됐다. 전통적 먹거리에 가미된 '위트있는' 현대적 재해석도 MZ세대의 관심사다.
스타벅스가 올해 초 선보인 시즌 음료 '홀 그레인 오트 라떼'와 '홀 그레인 오트 블렌디드'는 젊은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2030은 현미, 흑임자 등 국내산 통곡물이 들어간 '다소 생소한 음료' 고객의 70%를 차지했다. GS25의 올해 상반기 식혜 구매 고객 중 2030 비율도 60%에 달한다.
이처럼 SNS를 통해 '할매 입맛'을 인증하는 2030의 '할밍아웃'(할머니+커밍아웃)이 늘면서, 흑임자·인절미·팥·쑥 등을 활용한 디저트와 음료가 대거 등장했다. 농심켈로그는 지난해 품절 대란을 일으켰던 '첵스 파맛'에 이어 '첵스 팥맛'을 내놓으면서, 광고모델로 '오징어게임'과 '갯마을 차차차'에 출연한 '국민 할머니' 배우 김영옥을 낙점했다. 지난 9월 전통 간식 꽈배기를 도넛으로 재해석한 '흑임자 꽈배기', '인절미 츄이 먼치킨' 등을 선보인 던킨은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를 모델로 내세웠다. 같은 달 배스킨라빈스는 인절미와 흑임자 볼이 들어간 아이스크림 '찰떡콩떡'을 선보였다. 엔제리너스도 10월 한정판 신메뉴로 '고소한 인절미 라떼'와 '블랙흑임자라떼'를 선보이며 '할매 입맛' 유혹에 동참했다.
이같은 '할메니얼' 트렌드는 전통적 식재료는 물론 전통적 조리방식 또한 아우른다.
지난 10월 31일 신세계푸드가 선보인 '가수저라'가 단적인 예다. 조선시대 처음 들어온 양과자 카스텔라를 한자로 음차한 '가수저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통 레시피 그대로 팽창제·계량제·유화제 등 혼합제재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설탕 대신 꿀을 넣어 전통 가마방식으로 구워냈다.
신세계푸드 관계자는 "레트로 열풍을 타고 옛 정취를 담은 콘텐츠들이 현실 세계에서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즐거움을 찾으려는 MZ세대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면서, "전통의 의미를 강조하되 현대적 감성과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 아이템들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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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을 추구하는 MZ세대 사이에 '그래니룩(Granny look)'으로 불리는 할머니 패션은 오히려 '힙'하다. 4일 현재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그래니룩'으로 2만6000여개의 게시물이 검색된다. 찬바람이 불면서, 헐렁한 니트 베스트와 카디건이 옷장을 박차고 나왔다. 젊은층이 많이 이용하는 패션 플랫폼에서도 화려한 패턴과 강렬한 색상의 니트 제품이 인기다.
W컨셉의 10월 니트웨어 카테고리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배 정도 성장했다. 안지수 W컨셉 KAM팀 팀장은 "과감한 스타일링을 즐기는 MZ세대에게 빈티지함을 기반으로 비비드한 컬러감과 소재, 유니크한 디테일이 포함된 아이템이 반응이 좋은 편"이라면서, "그래니룩의 대표적인 상품군인 니트 상품 중에는 수작업으로 작업된 플라워 패턴 자수 패턴의 아이템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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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의 '패션 롤모델'로 떠오른 '밀라노 할머니' 유튜버 밀라논나도 '그래니 시크'의 대표주자다. '밀라논나' 장명숙씨는 MZ세대의 패션 멘토에서 인생 멘토로 영역을 확장했다. 90만명의 구독자 '아미치'를 위한 고민 상담이 패션팁 이상의 화제다. 지난 8월 펴낸 에세이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는 10월에도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톱10을 지키며 울림을 주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오랜 연륜과 경험이 녹아든 할머니들의 멋과 맛, 라이프스타일이 코로나19 장기화로 퍽퍽한 삶을 살아가는 MZ세대에게 푸근한 위로를 건네는 것 같다"면서 "옛스런 을지로 골목이 '힙지로'(힙스터+을지로)로 재탄생한 것처럼, '할메니얼' 트렌드 역시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열기를 이어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김소형기자 compact@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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