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칼럼] 입시위주 교육이 부른 '교실 붕괴'
기사입력 2000년 01월 06일 14시 38분
서울 강북의 한 남녀공학 2학년 고등학교 수학시간.
아직 바깥은 영하의 어둠이지만 교실은 형광불빛으로 대낮같이 밝다.
학생들은 형광불속에 뛰어든 부나비같은 형상.
선생님은 판서(板書)를 하면서 어려운 미적분 문제풀이에 목청을 돋우고 있다.
50여명의 학생 가운데 `범생이'(모범생) 5∼6명만 선생님과 눈을 맞추고 있을 뿐, 나머지는 제각기 딴청을 부린다. 잠이 모자란듯 하품을 하면서 기지개를 켜는 학생, 옆 친구와 무언가 쪽지 통신을 주고받는 학생, 그리고 파리한 얼굴에 아예 교과서까지 없는 학생도 있다.
선생님이 안 볼 때마다 한두명은 교실문을 살짝 열고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때론 흡연하다 들켜서 생활지도교사에게 치도곤을 맞기도 한다. `악악!'
몇몇 학생들은 시끄러워 잠을 못자겠다는 표정이다.
한 `날라리'(노는 학생)는 범생이에게 비행기 쪽지를 보내 "알려고하면 다쳐!"라는 알듯모를듯한 CF 카피를 보낸다.
이에 범생이는 미안하다는듯 "누군 하고싶어서 그러냐, 봐줘"라는 응답 메시지를 보낸다.
열창하는 선생님 모습은 썰렁한 무대위에 선 슬픈 삐에로같다.
교실붕괴, 교권붕괴.
대학입시를 목표로 하는 교육 현장에서 가장 잘난 학생은 `행복을 성적순'으로 믿는 범생이들뿐이다.
하지만 범생이들의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입시제도를 보면 모든 과목을 다 잘해야 돼요. 사람에 따라 적성과 개성과 지능과 취미에 따라 잘하고 못하는 게 있는 게 아닙니까. 한마디로 꼼짝마!죠."
"골때리는 미적분이며 함수를 꼭 알아야 하는 거예요? 곱셈, 나눗셈, 뺄셈, 덧셈만 할 줄 알면 돈 세는데 전혀 불편이 없잖아요." 한 날라리가 거든다.
서울대학(서울에 있는 대학)과 지방대, 2년제 대학 등 근 대(大)자가 붙은 학교에 간 학생이라 할지라도 전체 학생의 8할이 `명문대, 명문학과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한 전문가의 분석.
해방이후 50년 동안 온갖 미사여구로 모자이크된 수많은 입시제도의 개혁은 이제 한낱 공염불임이 확인됐다. 싫든좋든 공부벌레가 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현실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학교시계는 그 고통의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째깍째깍 무거운 시계추만을 좌우로 흔들어왔다.
학생들의 운명은 수능점수에 따라 칼로 두부모 잘리듯 결정지워진다.
학교는 대입의, 대입에 의한, 대입을 위해서만 존재할 따름, 한치의 다른 선택을 절대 불허한다.
그래서 성적부진으로 자살하고 가출하고 가정불화 나고 문제아가 발생한다면.
이 시대 학생들의 선택은 단 두가지다. `공부벌레가 될 것이냐 학교 게릴라가 될 것이냐'다. [김동철 기자 youth＠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