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소설] 폴라리스 랩소디 (42)
기사입력 1999년 04월 19일 14시 39분
율리아나 왕녀는 천정을 바라보며 공상에 빠졌다. 주로 이 선실에서의 탈출과 해적들과의 사투, 자유호의 점거, 슈마허와 라스의 해방, 위대한 승리 등에 관한 것이었다. 그 드라마틱한 공상의 클라이맥스는 비명을 지르며 바다에 떨어지는 키 드레이번의 모습이었다. 공상에 빠져있던 율리아나 왕녀는 자신도 모르게 히죽 웃었다. 낄낄낄.
하지만 그런 공상들이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사실은 그녀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혹시 이 감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지는 모른다. 그녀는 이미 식사에 따라나오는 생선 가시와 그녀의 속치마에서 뽑아낸 실을 조합해 낚시처럼 만들고, 그걸로 문의 빗장을 연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가시에 손가락을 찔려가면서까지 탈출 도구를 만들어 보았다.
하지만 그 `대탈주의 열쇠'의 제작이 끝났을 때 왕녀는 그것을 침대 밑에 던져버리고는 침대 위에 벌렁 쓰러졌다. 문은 열고 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 다음엔? 안타깝게도 이곳은 바다 위였고 따라서 왕녀는 어디로도 달아날 수 없었다. 해적들과의 사투? 왕녀는 검을 다룰 줄 모르며 그에 준하는 어떠한 살인 도구에 관한 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
속상해.
침대에 드러누운 채 속상해하던 왕녀는 싱잉 플로라의 고운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멍한 얼굴로 그 노래를 듣던 왕녀는 무의식 중에 가시에 찔려 화끈거리는 손가락을 입안에 집어넣었다.
왕녀가 자신의 자유를 쟁취할 방법들에 대해 공상하는 동안, 또다른 자유호의 노예는 자유호에서는 가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자신의 자유에 대해 난감해하고 있었다.
오스발은 멋쩍은 표정으로 노예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노예장님. 불편하시다면 쇠사슬을 채우세요. 저는 상관없습니다. 어디로 갈 것도 아니고."
"약올리는 거냐? 선장님께서 채우지 말라고 하셨는데 내가 널 묶는다고?"
"그럴 의도는 없습니다. 저, 그럼 마음 편하게 주무세요."
노예장은 끙！ 하는 소리를 냈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잠들 준비를 하지도 않았다. 노예장은 벽에 기대 앉은 채 오스발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노예장의 얼굴이나, 간혹 옆에 놓아둔 칼자루를 발작적으로 움켜쥐는 그의 손은 수십 마디의 말들을 외치고 있었다.
내가 잠들면 넌 내 목을 딸 거지? 그리고 노예들을 모두 풀어준 다음 반란을 일으킬 거지? 그래서 잠들지 않고 있는 거 누가 모를 줄 알아? 어림 반푼어치 없다.
네 녀석이 잠들 때까지 나는 절대로 잠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한 노예장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오스발은 그런 계획을 전혀 떠올리지 않고 있었다. 오스발이 잠들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뚫어지게 쏘아보고 있는 노예장의 시선이 거북했기 때문이다. 오스발은 몸을 옆으로 돌려보았지만 곧 노예장의 삼엄한 고함소리에 질겁하며 똑바로 누워야 했다.
"똑바로 누워！ 두 손을 내 눈에 보이는 곳에 놓고 얼굴도 보이게 하란 말이다！"
오스발은 할 수 없이 쇠사슬에서 풀려난 이후로 매일 밤 그래왔던 것처럼 눈을 꼭 감은 채 잘 들리지 않는 싱잉 플로라의 노랫소리를 들으려 애쓰면서 잠을 청했다. 자유의 이불은 그에게 결코 편하지 않았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