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현장] '이재수란' 佛배우들도 혀내두르는 강행군
기사입력 1999년 01월 07일 15시 52분
20세기의 마지막해를 맞이하느라 부산스러웠던 구랍 31일 오후 7시. 어둠이 짙게 깔린 제주 성읍 민속마을은 세속의 움직임과는 아랑곳없이 100년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제주의 전통 옷차림인 갈옷을 입은 양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성벽 위에서는 긴장한 표정의 병사들이 전투채비에 여념이 없었다.
국내 최초의 한불 합작영화 `이재수란'(박광수감독-기획시대 제작).
1901년 제주민란을 이끈 비극적인 영웅 이재수를 그리는 이 영화의 촬영현장은 굳게 닫혔던 100년이라는 시간의 빗장을 열고 21세기의 문턱으로 성큼 다가왔다.
지난해 11월 하순의 제작발표회 이후 계속된 촬영이 어느덧 한달여. 그동안 조명탑 설치사고로 두 명의 젊은 영화인들이 목숨을 잃는 등 수난으로 점철된 일정이었지만 200여명 가까운 제작스태프와 배우들은 일사분란한 행동으로 `대작'의 완성에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박광수 감독은 성읍 민속마을 전체를 오픈세트로 바꿔놓았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두 개의 아스팔트 국도를 10여톤의 흙으로 덮어놓았으며, 마을 어귀에 있던 전봇대 40여개를 한국전력공사의 협찬을 받아 모두 뽑았다.
성읍 민속마을은 100년 전의 제주마을로 완벽하게 재현되었다. 그러나 낮촬영보다는 밤촬영이 많은 관계로 촬영스태프들은 여간 어려움을 겪고 있질 않다. 이재수가 이끄는 민병들의 제주성 공격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조명 설치에만 7∼8시간이 걸릴 정도. 새벽 3시나 되어서야 `슛'이 들어가고, 완벽주의자인 박 감독의 수없이 반복되는 `NG!' 외침으로 촬영은 기껏해야 한 커트 아니면 두 커트 정도 찍는 게 다반사.
방은진은 촬영 후 몸살로 아예 눕고 말았다. 반복되는 촬영을 밤새도록 하고 나니, 마치 마라톤을 뛴 것 같더라는 게 방은진의 하소연.
이재수역의 이정재도 마찬가지. 촬영을 시작하고 나서 단 두차례, 그것도 하루일정으로 서울을 다녀왔을 뿐이다. 신년 개봉된 `태양은 없다'의 홍보에도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태양은 없다'의 제작사인 우노필름의 차승재 사장이 직접 내려와 박 감독에게 "하루만 빼달라"고 통사정을 했을 정도.
워낙 대규모 인원이 움직이는 작업인지라 하루만 촬영을 쉬면 `1천만원'의 제작비를 날려버리게 된다는 게 박 감독의 설명.
그래서 `이재수란'의 제주 촬영현장은 `새우잡이 배'에 비유되고 있다. 한번 촬영현장에 오면 언제 나갈 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날아온 프레드릭 앙드로, 세바스티앙 타벨 등 신부역의 프랑스 배우들도 혀를 내두른다. "수많은 영화를 찍어봤지만 이렇게 지독한 촬영현장은 처음"이라는 게 이들의 이구동성. 박 감독의 불호령은 프랑스배우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제주＝이창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