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씨] KBS상임지휘자 사퇴 심경
기사입력 1998년 05월 12일 01시 42분
"조국과 평생계약한 기분이다. 가장 하고싶었던 일을 하게 됐다." 지휘자 정명훈씨가 KBS교향악단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취임하면서 밝힌 소감이다.
그로부터 겨우 넉 달. 정씨와 KBS교향악단이 끝내 결별했다.
한국방송공사(KBS)는 11일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정명훈씨와의 계약을 해지한다고 발표했다.
KBS는 "정씨가 지난 4월 23일자로 계약해지 의사를 표명한데 대해 이를 수용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1월 1일자로 3년계약의 KBS교향악단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공식취임한 정씨는 이에 따라 130일만에 도중하차하게 됐다.
정씨와 KBS가 결별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부지휘자 선임문제.
정씨가 이탈리아인 메가씨를 부지휘자로 추천하자 KBS측이 `외화절감'을 이유로 수용하지 않으면서 심각한 갈등을 빚어왔다.
하지만 음악인들은 정씨와 KBS간에는 그동안 적지않은 앙금이 쌓여왔고, 서로에 대한 불만이 이번 부지휘자 선임건을 계기로 불거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씨는 11일 파리에서 각 언론사에 성명서를 보내 "KBS음악감독직을 사임하면서 슬픈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심경을 밝힌 뒤 "97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오케스트라의 조직과 운영방법 등 음악과 관련된 것의 개선을 요청하였으나, 그 어떠한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사퇴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또 "예술인들이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예술적 조건들을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KBS의 관료주의를 간접적으로 비난했다.
그러나 KBS측의 한 관계자는 정씨가 교향악단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찾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그가 주로 파리에 머물러 연습을 통해 서로 호흡을 맞춰볼 기회가 별로 없었고, 이에 대한 단원들의 불만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떠난다면 붙잡지 않겠다"는 반응들이 이를 대변한다고 말한다.
어쨌든 이번 사퇴 파문으로 정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지휘자로서의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었고, KBS교향악단은 세계적 연주단체로 발돋움할 기회를 미룰 수 밖에 없게 됐다.
한 음악평론가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한국 최고의 지휘자와 교향악단이 음악외적인 문제로 이같은 불협화음을 일으킨 게 안타까울 뿐"이라고 아쉬워했다.
[임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