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주한국신] 국제전화 작전지시->코치 임기응변
기사입력 1998년 04월 20일 15시 12분
"그놈은 별로 유명하지 않으니까 너무일찍 따라잡지 말고 뒤쫓다가 막판에 잡아채게 해. 뭐라고 거리가 더 벌어진다고. 더이상 거리를 주면 안돼. 바싹 붙었다가 막판에 추월하는 것이 최고야."
이봉주가 98로테르담국제마라톤대회서 2시간7분44초의 한국최고기록을 세우던 19일 밤 코오롱 마라톤팀 숙소인 서울 대치동 한보미도아파트 207동 402호는 엄청난 `고성'이 쏟아져 나왔다.
`주인'이 고성을 지르자 불안해진 애완견 `또또'와 `짱구' 모자까지 마구 짖어대 집안 분위기는 `불난 호떡집' 같았다.
이웃 주민들은 `부부싸움'이라도 났는가 싶어 싸움구경 요량으로 402호까지 왔다가 전화기에다 소리소리 지르는 비쩍 마른 노년의 남자를 보고는 재미 없다는 표정으로 되돌아가곤했다.
큰 목소리의 주인공은 코오롱 정봉수감독(63)이었다.
로테르담 현지에서 핸드폰을 통해 이봉주의 레이스 상황을 `생방송'하는 오인환코치에게 전략을 지시하는 장면이었다.
아무래도 핸드폰이어서 잘들리지 않아 오인환코치가 되물을때마다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음한 여자 마라토너 권은주의 발바닥 수술을 시키고 이날 급거 귀국한 정봉수감독은 누구보다 세계마라톤계의 흐름과 이봉주의 페이스를 잘 파악하고 있는 장본인.
하지만 권은주의 수술문제도 지체할수 없는 일이어서 이번대회는 오인환 코치에게 `대임'을 맡겼다.
오코치가 못미더웠을까.
정감독은 오코치의 질문이 올때마다 적절한 작전으로 이봉주의 페이스를 도왔다.
정감독은 당뇨가 심해 신장기능이 거의 마비된 상태다.
매 6시간 마다 신장 투석을 해야 하는 `중환자'다.
2시간이 넘게 전화기와 씨름한 끝에 이봉주가 2시간7분44초로 종전기록을 25초 앞당기며 한국신기록을 수립하자 정감독은 그때서야 까맣게 탄 입술을 물로 적셨다.
잘 달려준 이봉주와 정봉수감독의 전화기 작전 지시, 그리고 오인환코치의 임기응변식 전술 등의 하모니가 잘 이루어져 한국최고기록이 세워졌던 것이다.
[김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