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추적(6)
기사입력 1998년 04월 06일 14시 57분
주와일라 문 북쪽으로 알무이즈 거리가 뻗쳐 있다.
거리 한쪽의 번잡한 상가에는 관광객들이 몰려 있었는데 한국인들이었다. 부부동반의 관광단으로 중년층이다.
"어이 김사장, 거긴 살 것 없어"하고 떠들썩한 목소리로 한 사내가 말했다.
"싸구려야. 집에 걸어 놓았다간 웃음거리가 된다구."
배가 나온 그는 미제 골프셔츠에 목에는 니콘 카메라를 걸었다.
이준석이 다가가자 그는 가는 눈으로 재빠르게 이준석의 아래위를 훑어 보았다.
이준석은 낡은 야구모자에 더러운 반팔 셔츠를 입었고 더러운 운동화를 신었다.
"선생님, 부탁 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준석이 말하자 사내는 이맛살을 찡그렸고 옆에 서 있던 화사한 차림의 중년 여자가 사내의 팔을 당겼다.
"무슨 일이오?"
"한국대사관의 정필수 대령을 찾아가 주셨으면 합니다만."
그러자 사내가 눈을 둥그렇게 떴고 옆쪽에 서 있던 동행도 다가와 섰다.
"아니, 대사관에는 왜?"
"정필수 대령한테 이준석과 만난 것이 발각되었다고만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아니, 잠깐."
옆쪽 동행이 이준석의 말을 잘랐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데. 그런 건 댁이 전화를 해도 될 것아니오?"
"전해 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준석은 주머니에서 지갑 한개를 꺼냈다.
골목에서 마주쳤던 사내가 넘어졌을 때 호주머니에서 꺼낸 지갑이다.
"이것을 전해 주십시오. 날 습격했던 자의 지갑이라고."
그러자 골프셔츠가 한걸음 물러섰다. 잔뜩 경계하는 표정이었다.
"난 싫소.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김사장이란 사내는 아예 반쯤 몸을 돌렸다. 골프셔츠는 아내에게 끌려 멀어져 가고 있었다.
이준석은 길게 숨을 뱉었다.
정오 무렵이었다. 아침도 먹지 않았지만 시장기도 들지 않았다. 이준석은 길가의 노천 카페에 서 있었다.
수백명의 동서양 관광단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으므로 거리는 활기에 차 있었다.
"저기 있다."
카심이 다시 주먹으로 앞좌석을 쳤다. 그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렸다.
그의 부하들이 마침내 이준석을 찾아낸 것이다.
그는 무전기를 입에 댔다.
"서둘지 마라！ 양쪽에서 천천히 다가가라. 거리 건너편에도 다섯명쯤 대기하도록！"
그는 이준석이 서 있는 거리의 아래쪽 50@쯤에 세워진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자！ 가라！"
그가 소리치자 거리의 양쪽에서 십여명의 부하가 일제히 움직였다.
그러나 모두가 다른 차림인데다 행인들에 섞여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카심은 눈을 치켜뜨고 이준석을 바라보았다. 이준석은 카페의 옆쪽 벽에 등을 붙이고 서서 담배를 피워무는 중이었다.
이제 부하들과의 거리는 30∼40@로 좁혀졌다.
"골목으로 도망쳐！"
하고 옆을 지나던 서양인 관광객이 짧고 굵게 소리쳤다.
그러나 옆 얼굴만 보였던 사내는 이미 그를 지나쳐 간 후였다.
긴장한 이준석은 앞쪽에 시선을 주었다. 그러나 이미 서양인은 인파 속에 묻혔다.
불을 붙이다만 담배를 던진 이준석은 호흡을 멈췄다.
그 순간 사람들을 헤치며 다가오는 아랍인과 시선이 부딪쳤다.
그리고 그 옆의 사내도 이쪽으로 시선을 주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