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개구멍 등산객'도 돈 받습니다
기사입력 1998년 03월 24일 15시 21분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서울시내 북한산 관악산 등의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요즘 일거리가 늘었다.
IMF의 영향으로 인해 등산객이 작년보다 15％나 늘어나면서 정상적인 등산로가 아닌 속칭 `개구멍'을 이용하는 공짜손님들이 급증, 이들의 무단입산을 통제하는 업무가 추가된 것이다.
북한산국립공원 동부관리사무소 도봉분소의 경우 도봉동 보문능선 하단부 산정약수터 근처에 `이동매표소'를 두고 있다.
물론 공짜손님은 `제로'다.
도봉매표소 왼쪽 개구멍과 인근 무수골매표소 오른쪽의 계곡을 타고 무단입산해 봐야 어차피 보문능선을 거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동매표소라고 해서 거창하게 매표창구가 설치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도봉분소 직원들이 입장권을 가지고 서서 `개구멍손님'을 기다릴 뿐이다.
평일에는 이동매표소를 이용하는（?） 등산객이 10여명에 불과해 직원 1명으로 통제가 가능하지만 일요일의 경우 50여명에 달하기 때문에 3명은 붙어있어야 한다.
매표도 매표지만 계도까지 해야하는 까닭에서다.
북한산국립공원 입장료는 1천원.
명색이 국립공원을 이용하면서 커피 한 잔 값에도 못미치는 돈을 비정상적으로 아끼려는 사람들 때문에 인력낭비가 불가피한 것이다.
도봉분소의 양기식 소장（41）은 "항상 비정상적인 코스로 등산하는 사람들이 담배도 마음대로 피우고 취사까지 한다"면서 "자연보호를 위해서라도 단속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개구멍손님들의 이유는 참 다양하다.
그야말로 돈을 아끼려고 모험을 한 사람이 있는 반면 사업구상을 위해 사람들로 북적대는 주등산로를 피해 개구멍을 택한 명퇴자들도 있다.
발각되고 난 후의 반응들도 각양각색이다.
"돈 안내려고 험한 길을 택했는데…"라며 아쉬워하는 사람, "어！ 여기서도 지키고 있네"라며 화들짝 놀라는 사람, 그리고 "미안하다"며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염치도 없는 `적반하장형'이다.
잘못을 인정하기는 커녕 시비를 걸며 전투태세로 돌변하는 것이다.
법을 어긴 사람들이라고 해서 호통을 칠 수도 없다.
홧김에 불붙은 담배라도 내던지고 가는 날이면 그야말로 국립공원이 하루아침에 끝장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양소장은 "직원 13명이 순찰이다, 차량통제다, 청소다 해서 눈코뜰새 없이 바쁜데 개구멍까지 지키자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며 "등산객들이 진정으로 산을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재성 기자]
◇북한산국립공원 동부관리사무소 도봉분소 직원（오른쪽에서 두번째）이 `개구멍'을 통해 무단입산한 등산객들로부터 입장료를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