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정벌(13)

기사입력 1998년 01월 16일 15시 31분


윤의충의 정동행성군이 황하를 건너 장강 상류에 본진을 친 정벌군과 합류한 것은 그로부터 두달후인 8월초였다.

기병 2만에 보병 4만을 거느린 정동행성 병마절도사에 정남대도독인 윤의충이다.

그러나 넓은 벌판에 진을 친 50만 대군의 위용은 뱃심좋은 구광도 잠시 벌린 입을 닫지 못했다.

군기가 지평선을 덮었고 겔과 창고는 끝도없이 이어 세워졌으며 각 행성마다 제각기 다른 군복과 깃발로 위세를 뽐내고 있는 것이다.

윤의충이 본진의 바얀 총사령에게 신고를 했을때는 각 군의 사령들이 거의 모여 있었다.

바얀의 호화롭고 큰 진막안이었다.

"그대가 정남대도독 이군."

상좌에 앉은 바얀이 던지듯이 말하고는 윤의충의 군례를 받았다.

"그대의 무명(武名)은 많이 들었다. 이제 남송군을 상대로 무명을 떨치도록 하라."

주위에 둘러선 수십명의 장수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윤의충이 머리를 숙였다.

"소임을 다하겠소이다."

"듣던중 가장 실제적인 말이다."

바얀이 입술을 비틀고 웃자 진막안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바얀은 몽골인으로 홀라구를 따라 페르시아를 원정하고 거기서 청년시절을 보낸 사람이다.

그는 용모가 출중했고 용맹했으며 포용력이 있어서 쿠빌라이가 누구보다도 총애하는 무장이었다.

그는 30대 후반이었으며 아직도 전장에서는 진두에 선다. 바얀의 옆에 서 있던 백발의 노장이 나섰다.

"정동행성군은 별동군으로 군의 우측끝에 배치된다. 윤도독은 즉시 하천성으로 떠나도록."

그는 정벌군의 부사령인 사천택이었다.

당시 나이가 74세였는데 한인세후의 한사람이니 동족을 치는 입장이었지만 쿠빌라이가 신임하는 무장이다.

군례를 하고난 윤의충이 진막을 나왔을때 같은 대도독 복장을 한 무장이 따라 나왔다.

"장군."

그가 불렀으므로 그들은 진막 밖의 깃발아래에서 마주보고 섰다.

상대는 30대 초반쯤의 몽골인으로 시선이 마주치자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나는 감숙행성의 병마절도사인 카라차르라고 하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고려국 김준공의 딸 김영의 지아비가 되는 사람이기도 하오."

"그렇습니까?"

머리를 끄덕인 윤의충이 따라 웃었다.

"낭자께선 무고 하신지요?"

"카라차르의 자식이 여섯달 후에는 태어납니다."

"경사입니다. 부디 몸을 보중하시어 자식이 아비의 훈도를 받도록 하시기를."

"고맙소이다."

카라차르가 머리를 조금 숙여 예를 보였다.

"오신다는 말을 듣고 꼭 만나고 싶었소이다. 그리고 낭자가 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소."

이제는 윤의충이 머리를 숙였다.

"고마우신 배려올시다."

"나도 우측의 제2진이오. 전장에서 다시 만날수가 있을 것이오."

"뵙게 되기를 고대하겠소."

그와 헤어져 말에 올랐을때 말고삐를 건네준 만척이 물었다.

"장군, 원제국의 대도독 중에 아시는 분이 있으셨소이까?"

윤의충이 대답대신 눈을 가늘게 뜨고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석양 무렵이었다. 저녁 노을이 지고있는 지평선에 가득 덮인 깃발이 마치 숲과 같았다.

그는 말없이 말에 박차를 넣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