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치라이트] 지금이 바둑이나 두고 있을땐가
기사입력 1997년 06월 24일 14시 51분
차라리 한편의 서글픈 코미디였다.
지난 22일 청소년축구대표팀이 브라질에 3대10으로 참패하던 날, 온 국민들은 허탈함을 넘어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꼈다.
평소 축구엔 통 문외한인 사람들조차 "창피하게 10골이 뭐냐"며 한결같이 쓴웃음을 지어 보일 정도였다.
그랬다. 남녀노소를 떠나 대한민국 사람치고 흙덩이 부서지듯 허물어지는 한국축구에 대해 한번쯤 역겨움을 토해내지 않은 이는 없었으리라.
애꿎은 신문 방송사에 다이얼을 돌려 화풀이해보지만 그때 뿐, 은근히 치밀어오르는 부아는 도대체 참기가 힘들다.
화살을 축구협회로 돌려보지만 전화는 계속 통화중.
"그 사람들은 왜 전화도 안 받는 거예요！"
이튿날 23일, 축구협회를 가 봤다.
점심시간. 그곳은 `의외로' 조용했다. 오히려 이날 아침 말레이시아에서 급히 귀국한 축구협회의 한 고위관계자는 축구협회 모부회장과 연신 울려대는 전화벨을 벗삼아 신선놀음을 즐기고 있었다.
"점심도 먹고 한가한 김에 바둑좀 두고 있었어요."
자성의 분위기로 `내일'을 고민할 것으로 기대했던 애초의 기대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그들 옆에 앉아 빗발치는 축구팬들의 항의전화에 지친 여직원이 안쓰럽기만 했다.
2시까지 `망중한'을 즐기던 이들은 이윽고 몸을 추스린다.
3시부터 정몽준 회장에게 청소년대표팀과 관련한 긴급 현안보고와 함께 대책회의가 잡혀 있어서 준비해야 된단다.
3시무렵, 이번엔 회의 출석을 위해 프로축구연맹의 한 고위관계자가 등장한다.
그 사람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왈(曰) "아니 우리 정몽준 회장님이 오늘 아침에 귀국하셨다면 미리 말씀해주셔야 되잖아요. 그래야 공항으로 마중이라도 나갈 것 아녜요！"
정말 서글펐다.
온 국민은 지금 국제적 망신에 `몸서리'를 치고 있건만 한국축구를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하고 있는 이들의 행동은 국민의 목소리는 안중에도 없고 단지 자신의 자리보전만을 위한 `몸부림'으로 비쳤다.
정말 그것은 차라리 보지말았어야 할 한편의 슬픈 코미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