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반역 (8)
기사입력 1997년 06월 18일 14시 11분
안화옥이 바짝 말을 붙였으므로 그들은 나란히 섰다.
"몽골군은 한 성을 점령하면 성주와는 형제의 의를 맺으면서 반몽세력은 꼬투리를 잡아 모두 죽였습니다. 게다가 이곳은 그곳과도 다릅니다. 왕이 이미 몽골군 편에 서 있으니 조건이 더욱 좋지요."
"꼭 오늘밤에 그런다는 증거가 있소?"
그러자 안화옥이 손끝으로 밤하늘을 가리켰다.
"신성(新星)이 붉은빛을 띠고 있습니다. 화가 접근했다는 표시지요."
"허어, 별을 보고 길흉을 아오?"
놀란 듯 윤의충이 묻자 안화옥이 시선을 비꼈다.
"한나라 도인이 쓴 책을 보고 배웠지요. 집중하면 조금은 깨닳습니다."
"그렇다면 내 운세를 시험해 봐야겠소."
윤의충이 말고삐를 채어 말머리를 세우자 그녀가 머리를 들었다.
"장군의 운세는 강합니다. 하오나 만용을 부리신다면 주위의 사람들만 피해를 입게 되지요."
그 시간에 왕창국은 진영으로 삼은 북문 근처의 보락사 대웅전 앞에 서 있었다.
넓은 절마당은 조용했고 앞쪽 대문에는 일렁거리는 횃불 옆에 서너명의 경비병만 보일 뿐이다.
옆쪽에서 팽덕이 다가왔다.
"장군, 준비가 다 되었소이다."
두 사람 모두 갑옷에 칼을 찬 차림이었다. 팽덕이 힐끔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올시간도 되었소이다."
"그놈들만 벤다면 오덕도 따위에는 갈 필요도 없어."
뱉듯이 말한 왕창국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절마당의 양쪽 건물에는 각각 100여 명의 복병을 숨겨둔데다가 대웅전의 뒤쪽에도 100명이 있다.
대문 밖에는 1천여 명의 군사가 진을 치고 있었으니 안으로만 들어오면 일격에 참살할 수가 있는 것이다.
"김준이 이를 갈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대놓고 나서지는 못할 것이다."
"고려인은 끈질긴 족속입니다. 거란족과 여진족, 한족을 모두 겪었지만 그들은 우두머리 몇놈만 잡으면 고삐 꿰진 소처럼 따라 왔지요. 그런데 고려놈들은 백성들까지 나섭니다."
"별종이다. 30여 년간 그렇게 당했는데도 아직도 기가 살아있다니."
대문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으므로 그들은 긴장했다.
횃불 사이로 두 필의 말이 달려 들어오고 있었다. 고려군이었다.
"장군."
멈춰선 말에서 뛰어내린 군사 하나가 소리치듯 말했다. 유창한 몽골말이다.
"왜선 네 척이 성포를 침탈하여 화광이 충천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경내를 울렸다.
"목사와 방호사가 급히 성포로 떠났는데 목사께선 장군께 지원병을 요청하셨소이다."
"지원병을?"
이맛살을 찌푸린 왕창국이 교위 복장을 한 고려군관을 노려보았다.
"우리한테 말이냐?"
"예, 장군, 방호사 휘하에는 왜적을 물리칠 만한 병력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왕창국이 허리를 펴고는 턱을 들었다.
"서문 밖에 너희 고려국 별초군이 있다. 그쪽으로 가서 지원군을 받는것이 마땅한 일이야."
"장군, 그쪽으로도 파발이 갔소이다."
"그렇다면 되었다."
교위가 왕창국을 똑바로 올려다 보았다.
"장군, 목사께 몽골군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전하리까?"
그러자 팽덕이 나섰다.
"이놈, 무엄하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우리 몽골군은 황제 폐하의 명령에만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