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그들만의 리그 (2)
기사입력 1997년 04월 08일 14시 58분
90년 3월, 봄바람은 아직도 쌀쌀했지만 사파리는 새로운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곰 사파리 때문이었다. 당시까지 서구 선진국과 일본 등 몇몇 국가의 동물원에만 곰 사파리가 있었지만 국내 사육 기술로는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있었다. 곰은 사자나 호랑이와 달리 머리가 좋고, 앞발을 잘 쓰기 때문에 나무와 담장을 잘 타고, 땅을 파서 탈출할 위험도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에버랜드는 곰 사파리를 만들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시작한 작업은 곰을 모으는 일이었다. 당시 에는 불곰이 20마리밖에 없어 다른 동물원에서 `선수'를 스카우트해야 했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됐다. 그때까지 에서는 맘모스가 `왕곰'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었지만 전국에서 한가닥 하는 곰들이 몰려오자 사정은 달라졌다. 꽃샘 바람을 잔뜩 실은 화물차가 동물아파트 앞에 섰다. 사육사들은 잔뜩 긴장한 채 창살문을 굳게 잠근 자물쇠를 열었다. 문이 열리자 오랜 여행에 짜증이 난 곰 3마리가 신경질적인 기지개를 켜며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전주에서 올라온 새 식구였다. 사육사들은 그 가운데 특히 한마리에 온갖 신경을 집중했다. `전주파' 원조 곰보살이었다. 곰보살은 몸무게가 280㎏으로 에 있던 350㎏의 맘모스나 320㎏의 곰돌이보다는 덩치가 작았지만 몸매가 차돌처럼 단단하고 민첩해 곰 사파리에서 한바탕 돌풍을 일으킬 유망주로 보였다. 곰보살에 이어 합류한 것은 어린이대공원에서 온 공원과 시커먼스였다. 공원은 곰 가운데에서도 특히 못생겼지만 힘이 좋아 밀어붙이기가 주특기였고, 불곰치고는 새카만 털이 돋보이는 시커먼스는 자기보다 약한 곰을 괴롭히는 못된 성격을 타고났다. 전국에서 모여든 곰들이 모두 싸움꾼은 아니었다. 애교가 살살 넘치는 보살은 싸움꾼 남편인 곰보살을 따라 전주에서 올라온 `애첩기질'의 주인공이었고, 대구 달성공원에서 온 날나리아는 첫날부터 수곰들을 홀리는 바람둥이었다. 싸움과 사랑이 뒤엉킨 곰 사파리는 처음부터 예고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