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네빅] 그린위의 '낙천주의자'
기사입력 1997년 03월 22일 14시 59분
미국프로골프 ＰＧＡ투어를 관전하다보면 모자를 뒤로 꺾어 쓰고, 몸에 딱 달라붙은 60년대 풍의 바지를 입은 묘한 선수를 보게 된다. 고수머리에다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해 나이어린 `악동（惡童）'을 연상시키는 이 골퍼는 올시즌초 무서운 상승세를 타고 있는 예스퍼 파르네빅（32）. 스웨덴 출신의 파르네빅은 ＰＧＡ 투어에서 외모 만큼이나 기인으로 소문이 나 있다. 그는 점성술과 정신분석에 심취하기도 했고 몸에 좋다며 3개월간 과일과 화산재만 먹는가 하면 한번 여행하면서 4번이나 비행기표를 잃어버릴 정도로 건망증이 심하기도 하다. 지난해 스프린트 인터내셔널 대회에서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도 탈락한 것으로 착각해 공항으로 떠나버리는 바람에 우승 기회를 놓쳤다. 94년 브리티시 오픈에서는 점수판을 지켜보지 않다가 마지막 라운드 18번 홀에서 보기를 범하며 1타차로 닉 프라이스에게 패권을 넘겨주었다. 프라이스의 스코어를 몰랐던 파르네빅은 자신이 버디를 잡아야 동점을 이룰 수 있다고 계산해 무리를 하다가 보기를 범한 것. 그는 그러나 어이없이 우승을 넘겨주고도 "아직 나에게는 메이저 대회 우승이 너무 이르다. 유명해진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며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스웨덴 최고의 코미디언 보 파르네빅의 아들인 예스퍼는 어린시절에는 수학에 뛰어났고 과외활동으로 연극의 주연을 도맡아 했으며 10대 중반에 이미 밴드를 결성하고 노래를 만드는 재능을 과시했다. 그러나 13세때 처음 골프채를 잡으면서 아버지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골프라는 생각으로 여기에 장래를 걸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긴 겨울과 추운 날씨가 계속되는 스웨덴에서 세계적인 골퍼로 성장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84년 이미 대학 졸업장을 받은 상태에서 미국 플로리다주의 팜비치 2년제 대학에 골프 선수로 입학했다. 2년뒤 프로로 전향한 파르네빅은 88년부터 유럽 ＰＧＡ투어에서 뛰기 시작했고 93년에 스코티시 오픈에서 첫 승리를 장식했다.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파르네빅이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은 그의 성격 탓. 항상 생각이 많은 그는 스윙을 하면서도 한번에 3가지 타법을 연구할 정도로 나쁘게 말하면 집중력이 떨어졌다. 한번은 `묘기 전문골퍼'가 1번 아이언으로 공을 곧바로 하늘로 쳐 올리는 것을 보고는 4개월이나 연습해 그 기술을 익힌 엉뚱함도 ＰＧＡ에서의 성공에 장애가 됐다. 그러나 올시즌 파르네빅은 6번 출전한 ＰＧＡ투어에서 4차례나 5위권에 진입했고 이중 2번은 준우승을 차지했다. 스윙에 대한 자신감과 명상을 통한 집중력 향상이 파르네빅을 전혀 다른 골퍼로 변신시킨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