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적과의 동침 (17)
기사입력 1997년 02월 26일 15시 00분
해골파 두목 천하는 진작부터 포철을 의식하고 있었다. 호랑이와 합사만 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용팔이의 뒤를 이어 자연스럽게 사자공화국의 왕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나이 많은 사자들이 사파리를 떠나고 판도가 바뀌자 사육사들이 포철을 왕으로 추대한 셈이다. 게다가 포철은 호랑이 왕 호걸을 한방에 KO시켜 `라이언 킹'으로서의 파워를 뽐내며 왕위 즉위식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 상태로 가면 포철의 왕위가 기정사실화됨은 물론 신진파가 사파리를 통치하고 해골파는 권력의 변두리를 맴도는 비참한 신세가 될 게 뻔했다. 호랑이와 합사한 뒤 천하 역시 호랑이 몇마리와 싸워 이겼지만 호걸 4형제가 아닌 비교적 쉬운 상대와 붙어 초라한 승리만 거둔 셈이다. 천하가 호걸의 동생 호식을 가멸차게 몰아붙인 것은 바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야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식은 괜히 고기 한덩이 먹으려다 사자들의 파워 게임의 희생물이 된 셈이다. 천하는 호식을 해치운 뒤 마침 이를 지켜보던 포철과 눈이 마주치자 큰 소리로 포효했다. `나를 무시하지 마라'는 시위였다. 천하 마저 강적 호식을 짓밟자 호랑이들은 더욱 위축됐다. 포철만 피하면 다른 사자는 해볼만 할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호랑이들은 사자가 자신들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세며 게다가 조직으로 움직여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적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빠른 발로 도망가는 길밖에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게 됐다. 사파리는 이제 사자와 호랑이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 신진파 포철과 해골파 천하 양대 조직의 수중에 떨어졌다. 어느 사회나 지배층은 피지배층을 수탈하게 마련이다. 더구나 철저하게 힘의 논리만이 있는 동물의 세계에서는 약육강식만이 있을 뿐이다. 사자의 호랑이에 대한 횡포가 시작됐다.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식사였다. 패트롤카가 사파리를 돌아다니며 먹이를 골고루 던져주지만 호랑이들은 사자의 눈치를 살피며 먹어야 했다. 자기 앞에 떨어진 고기라도 사자가 윽박지르면 꼼짝 못하고 내줘야 집단구타를 피할 수 있었다. 아무리 약한 사자라도 조직을 등에 업고 호랑이 위에 군림하는 완전 계급사회가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식사에서 끝나지 않았다. 사자들이 암호랑이들을 겁탈하기 시작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