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증시가 전세계에서도 수익률이 최저 수준에 머물 정도로 침체되면서 투자자들의 이탈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내의 상장지수펀드(ETF)조차 해외 자산을 기초로 한 상품에 대한 투자 편중 현상이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국내 투자 ETF와의 순자산 증가율 격차도 크게 벌어지고 있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거래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국내 상장된 ETF 중 해외 자산을 기초로 한 상품 386종의 순자산은 53조 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내 자산을 기초로 한 ETF 상품은 507종, 순자산 106조 1000억원이다. 여전히 국내 자산 기초 ETF가 2배 가까이 되지만, 이를 5년 전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가 나온다.
무엇보다 해외 시장의 종목과 지수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면서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이 그만큼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서학개미처럼 직접 해외 증시에 투자를 하지는 않더라도, 국내에 상장된 ETF를 통한 간접 투자로도 충분히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이같은 성장세를 이끌었다.
올해 들어 미국 증시가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며 안정적인 우상향 흐름을 보이고, 인도 등 신흥국 증시도 빠른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오랜 침체기를 겪었던 일본과 대만 지수 역시 확실한 상승세다. 반면 국내 증시는 박스권 행보를 보이면서 해외 자산으로 투자처를 옮기는 추세가 증가한 것이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올해 들어 21.9% 오르고, 인도 증시 대표지수인 센섹스(SENSEX)는 12.6% 상승했다. 일본 니케이225 지수 역시 18% 넘게 올랐다. 이에 반해 코스피 지수는 2.2% 하락한 상태다.
금융정보업체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올해 개인 투자자의 순매수 상위 20개 ETF 중 국내 자산을 기초로 한 ETF는 KODEX CD금리액티브(합성), KODEX코스닥150레버리지 등 5개뿐이다. 운용사별로 보면 2022년부터 해외 투자 ETF 비중이 더 커진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한투운용의 ETF 순자산 11조 4669억원 중 해외 투자 ETF(53종)가 7조 8305억원, 국내 투자 ETF(33종)는 3조 6363억원이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투자 ETF 편중으로 인해 투자금이 국내 증시로 유입돼 지수가 오르는 효과가 나타나지 못하고 있으며, 규모가 큰 국제 자산 기초 상품들도 대부분 국내 주식형보다는 금리형 상품, 단기 채권형 상품에 편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정 의원은 "ETF 시장이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해외 자산을 기초로 한 ETF 투자 증가로 국내 자본 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은 부족한 상황"이라며 "코리아 디스카운트(주식 저평가) 현상에 국내 기업과 경제에 투자자들의 자금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의 핵심인 지배구조 개선과 투자자 보호 대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한편 ETF 투자에도 옥석 가리기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올해 상장 폐지된 ETF의 수가 지난해보다 두 배 넘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연간 상장폐지 ETF 수는 지난 2020년 29개, 2021년 25개에서 2022년 6개, 지난해 14개로 소폭 줄었다가 올해 35개로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상장폐지 전 단계인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ETF 수는 5개로 집계됐다.
한국거래소는 상장한 지 1년이 지난 ETF 중 신탁 원본액이 50억원 미만이면서 순자산 총액이 50억원에 못 미치는 ETF를 관리종목으로 지정한다.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후 다음 반기 말까지도 이 같은 상태가 지속되면 해당 ETF는 강제 상장폐지 수순을 밟게 된다. ETF 순자산 규모가 160조원을 넘어서며 양적으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출시된 상품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