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자금이 은행으로 몰리고 있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고금리를 제공하는 은행의 저축성예금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잔액 10억원이 넘는 고액 예금 증가세가 지속, 이들 계좌의 총예금 규모가 800조원에 근접했다. 기업도 그동안 경기불확실성에 투자 확대 대신 은행 예금을 활용했지만, 지난해 하반기 자금시장 경색 등의 영향으로 대출보다 예금을 활용하고 있어 고액 예금 증가 폭은 소폭 감소했다.
10억원 초과 고액 예금 계좌 수는 2021년 6월 말 8만4000 계좌, 2021년 말 8만9000 계좌, 2022년 6월 말 9만4000 계좌, 2022년 말 기준 9만5000계좌로 늘었다.
10억원 초과 저축성예금 잔액은 2017년 말 499조1890억원에서 2018년 말 565조7940억원, 2019년 말 617조9610억원, 2020년 말 676조1610억원, 2021년 말 769조7220억원, 2022년 말 796조3480억원으로 확대됐다. 지난해 말 기준 10억원 초과 고액 계좌를 종류별로 살펴보면 정기예금은 564조5460억원이다. 2021년 말 509조8150 대비 10.7%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기업 자유 예금은 234조7850억원에서 219조8900억원으로 6.3%(14조8950억원), 저축예금은 24조4480억원에서 11조5250억원으로 52.9%(12조9230억원) 감소했다.
기업 자유예금은 법인과 개인 기업의 일시 여유자금을 은행에 예치하는 상품이며, 저축예금은 입출금이 자유로운 결제성 예금이다. 지난해 개인과 기업 예금이 입출금이 자유로운 대신 이율이 낮은 저축예금이나 기업 자유예금보다 예치 기간을 정해놓고 상대적으로 고금리를 제공하는 정기예금 등으로 자금이 몰린 것으로 추정된다.
저축성예금 중 5억원 초과∼10억원 이하의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75조6660억원, 1억원 초과∼5억원 이하는 211조1000억원으로 반년 전에 비해 각각 4.2%(3조220억원)와 5.4%(10조7590억원) 증가했다.
고액 정기예금 규모가 늘어난 배경에는 한국은행이 지난해 7월과 10월 두 번의 '빅스텝'(기준금리 0.5% 인상)을 단행한 것이 자리잡고 있다. 금리 인상으로 고금리 상품이 많아지며 개인 고객 자산가와 기업이 은행 예금에 여윳돈을 넣어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10억원 초과 고액 예금의 전년 말 대비 증가율은 2017년 말 7.2%, 2018년 말 13.3%, 2019년 말 9.2%, 2020년 말 9.4%, 2021년 말 13.8% 등에서 지난해 말 3.5%로 둔화했다. 지난해 하반기 증가율(전기 대비)은 1.1%로, 4.4% 줄었던 2013년 2분기 이후 증가율이 가장 낮았다. 지난해 말 금리가 치솟아 이자 부담이 늘어나자, 기업들이 보유예금 중 일부를 대출 상환에 활용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예금은행 기업대출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지난해 1분기 3.35%에서 2분기 3.63%, 3분기 4.41%에 이어 4분기 5.5%까지 늘었다. 은행별로 차이는 있지만 통상 10억원 초과 고액 예금의 80∼90%를 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올해 들어 기업 자금시장 경색이 어느 정도 풀린 데다 대출금리도 내려가고 있어 기업 고액예금은 다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2일 '2023년 5월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을 통해 최근 물가 상승세가 지속적으로 둔화하는 가운데, 내수는 완만한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으나 수출·설비투자 부진 등 제조업 중심의 경기둔화가 지속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고액 예금 증가 폭이 둔화했지만 여전히 상승 기조를 보이고 있다"며 "경기 둔화로 인해 투자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은행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 고액예금 증가세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