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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4년 출범한 경륜이 오는 10월 15일이면 '24돌' 생일을 맞이한다.
아마시절 태극마크를 달고 국내외를 주름잡던 국가대표 출신들을 비롯, 경륜 원년 '달리는 보증수표'로 꼽히던 은종진, 2기 빅3, 5인방 및 4대천왕에 황제 조호성 등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경륜의 레전드들이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이 '은륜스타'들도 결국 나이에 따른 체력적 열세. 각종 부상 후유증, 개인사 등을 이유로 벨로드롬을 떠났다.
그러나 이런 세월의 흐름이 무색하게 데뷔초부터 현재까지 꾸준한 활약을 펼치는 선수가 있다다. 3기 김우병(46·일산팀)이다.
훈련원 성적은 42명중 8위로, 언뜻 보면 준수한 성적이다. 하지만 3기는 역대 기수중 최약체로 평가받을만큼 비 선수 출신이 많았고 덕분에 '외인부대' 별칭도 얻었다. 국가대표 출신들이 즐비한 2기나 대부분 공백없이 아마에서 프로로 직행한 젊은피 4기들에 비해 주눅이 들 수 밖에 없는 명단이었다.
특히 김우병은 운동선수치곤 작은 1m68의 키에 몸무게는 70kg에도 못미쳐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우병은 전매특허인 선행 전법을 내세워 알토란 같은 성적을 올리며, 선발에서는 강자, 우수급에서는 복병으로 활약했다.
여기서 중요한건 '꾸준함'이다. 그동안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로 경륜 그랑프리는 물론 각종 대상 경주를 휩쓸며 벨로드롬의 지존으로 군림했던 지성환, 현병철, 동기중 수석으로 졸업한 도로 제왕 용석길도 세월을 이기지 못해 결국 선발급으로 추락했고 상당수의 국가대표 출신들이, 물론 자의도 있지만 성적 불량으로 인해 불명예스럽게 옷을 벗기도 했다. 이들이 한창때 김우병은 경기조차 함께하질 못했었다. 언감생심, 특선급은 그야말로 김우병에겐 꿈의 무대였다. 그 선수들 중에는 나이가 적은 이들도 있다.
자료를 살펴보면 데뷔초 김우병이 가장 혈기 왕성했던 96년에는 승률이 11%, 연대율 22%였다. 그리고 가장 좋았을때는 2012∼2013년으로 승률 27%, 연대율 45%다.
올시즌은 승률 19%, 연대율 41%다. 데뷔초-전성기때와 거의 차이가 없는 성적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경기 내용이다. 경륜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선행같은 자력 승부에서 마크 추입같은 기교파로 변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운동선수론 환갑을 넘어선 나이에도 불구하고 김우병은 자력 승부를 통한 입상률이 50%에 달한다. 이는 남의 도움 없이 순수 본인의 힘으로 달성한 성적이기에 더욱 값지다.
덕분에 과거 올려보던 선수들이 지금은 김우병 뒤에 붙어가려 애를 쓰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노장이지만 그 만큼 대우받고 경기를 풀어갈 수 있는 이유다.
여기에 2002년 제 1회 굿데이배, 2005년 제10회 SBS스포츠채널배 선발 대상에서 2위에 입상하기도 했고 지난 4월 훈련지 대항전에서는(북부그룹) 최장수로 우승의 영예도 안았다.
이쯤되면 '세월에 장사없다'란 말이 김우병에게만큼은 통하지 않는 듯 하다. 같은 등급내에서 꾸준한 성적을, 그것도 같은 전법으로 20년간 유지하는 선수는 거의 전무하다. 농담처럼 아들, 조카뻘 후배들에게 "어디 불로초라도 드시냐"는 소릴 듣는 이유다.
당연히 불로초는 없다. 그저 몸에 해로운 일을 삼가하고 하루도 거르지 않는 꾸준한 연습만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여기에 나이에 따라 훈련방법이나 체력 관리를 달리하는 것은 그만의 연구와 노하우의 결정체다.
뻔한 것 같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과정들이 김우병에겐 습관처럼 배어있는 것이다. 김우병의 최종 목표는 1기 허은회, 장보규에 못지 않은 최장수 선수로 남는 것이다.
경륜 원년전문가로 오랫동안 김우병을 지켜본 '최강경륜'의 박창현 발행인은 "경륜은 개인의 능력 못지 않게 승패에 있어 연대적 부분이 중요함에도 불구 김우병은 흔한 인맥조차도 없다. 이런 불리함까지 극복하며 늘 한결같은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놀랍고 이는 타의 귀감"이라며 "화려하진 않아도 벨로드롬에 꼭 필요한 보석같은 존재"라며 찬사를 보냈다.
신보순기자 bsshi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