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무늬만 국산차'로 불리는 국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수입차 시장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 6일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은 '2018 부산 국제모터쇼' 전야제에서 "미국 본토에서 성능과 가치가 확인된 유수의 글로벌 SUV의 국내 시장 출시를 기대해 달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 첫 타자로 중형 SUV '이쿼녹스'를 공개한 뒤 국내 출시를 공식 발표했다.
'이쿼녹스'는 쉐보레 SUV 라인업의 글로벌 대표 모델로 2004년 1세대 모델이 출시된 이후 2009년 2세대 모델이 선보였으며, 새로 출시된 3세대 신모델은 SUV 시장 최대 격전지 미국에서 지난해 29만대 연간 판매고를 기록하며 풀사이즈 픽업 트럭 실버라도에 이어 북미 최다 판매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이들 제품은 모두 미국이나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 공장에서 생산 중인 것들이다.
'이쿼녹스'는 한국지엠의 5번째 OEM 수입차다. 한국지엠은 그동안 대형 세단 '임팔라', 스포츠카 '카마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 '볼트'(Volt), 전기차 '볼트'(Bolt)를 해외 GM 공장에서 수입해 국내에 판매해 왔다. 여기에 더해 최근 국내에서도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SUV 시장을 겨냥해 중·대형 SUV를 추가로 투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빠르게 변하는 고객들의 수요에 맞춰 국내 생산라인을 신속하게 전환하는 데 구조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글로벌 브랜드로서 쉐보레가 보유한 다양한 차량 라인업을 활용해 국내에 좋은 제품을 소개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르노가 모기업인 르노삼성자동차도 OEM 수입차를 들여오고 있다.
소형 SUV 'QM3'와 전기차 '트위지'에 이어 지난달에는 소형 해치백 '클리오'를 국내에 출시했다. '클리오'는 유럽 시장에서 10년 이상 동급 판매 1위를 차지한 베스트셀링카다.
한국에서 생산하는 차량에는 르노삼성의 엠블럼인 '태풍의 눈'이 달렸지만, '클리오'에는 르노의 마크인 다이아몬드 모양의 '르노 로장쥬 엠블럼'이 부착돼 있다. 르노삼성은 매월 '클리오'를 1000대 이상 판매해 업계 3위 자리에 오른다는 각오다.
이들 OEM 수입차는 출시 초기 소비자들의 큰 관심을 받으며 높은 판매량을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 국내 경쟁 모델들의 견제 속에 인기를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
임팔라의 경우 현대차의 '그랜저'에 발목을 잡혔고, QM3는 쌍용자동차의 '티볼리'나 현대차 '코나' 기아차 '스토닉' 등의 견제를 받았다.
실제로 국내 생산차 성능이 향상되면서 OEM 수입차의 판매는 2015년 정점을 찍은 후 정체 상태다. 신차인 클리오나 이쿼녹스도 경쟁 국산 차에 비해 가격, 차체 크기, 엔진 성능 등이 뒤처져 판매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완성차업체들이 적극적으로 OEM 수입차를 국내에 들여오는 이유는 국내에 생산라인을 새로 설치하는 등의 투자 없이 손쉽게 판매 차량 리스트를 확대할 수 있고, 기존 판매망과 A/S망을 활용할 수 있다는 강점 때문이다.
여기에 OEM 수입차의 확산은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에 기여하고 국내 자동차 시장 생태계를 다양화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최근 출시한 클리오는 주행성능을 강조한 소형 해치백으로 현재 국내 시장에 없는 새로운 차종"이라며 "기존에 없던 시장을 개척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해외 공장에서 생산한 물량을 따내 들여오는 방식이다 보니 수요가 기대 이상으로 커도 기민하게 물량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문제는 일자리와 직결된 국내 공장의 일감을 늘리거나 가동률을 높이는 데에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국내에 생산설비를 둔 완성차업체가 OEM 수입차를 많이 팔수록 이들이 국내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은 내수시장에서 입지가 그만큼 좁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OEM 수입차가 늘어날수록 결국 한국의 자동차 생산 인력이 줄고 국제 경쟁력도 약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고 밝혔다.
이정혁 기자 jjangg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