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신업계의 '뜨거운 감자'인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에 영향을 미칠 만한 사례가 미국에서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M&A 인허가 심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참고 사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15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차터커뮤니케이션(이하 차터)과 타임워너케이블(이하 타임워너)의 M&A 관련 승인을 앞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차터는 M&A를 통해 미국 케이블TV업계의 2위 사업자로 등극, 1위인 컴캐스트를 견제하는 강력한 2위 사업자가 될 전망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라이트만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말 기준으로 컴캐스트 가입자는 2240만명이다. 타임워너와 차터의 가입자는 각각 1100만명과 430만명. 차터와 타임워너의 합병이 이뤄질 경우 1530만명으로 컴캐스트를 위협할만한 규모를 갖추게 된다.
타임워너와 차터 간 M&A 승인은 동종업계 간 M&A를 허가하는 최신 사례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정책당국이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의 기업 결합 승인과 불허에 대한 어떤 결과를 내놓던지 간에 업계 간 볼멘소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따라서 소모적 논란을 피하고 깔끔한 마무리를 위해선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해외사례를 명분으로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전했다. 미래부와 공정위가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의 M&A와 관련해 해외 참고사례로 눈여겨보고 있는 만큼 인가 심사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FCC는 독점사업자의 출현을 우려해 동종업계 간 결합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던 곳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가입자 2240만명을 보유한 1위 사업자 컴캐스트가 2위 사업자 타임워너의 M&A 시도를 적극적으로 막았다. 동종업계 1, 2위 사업자간 M&A로 인한 독점사업자 출현은 업체간 경쟁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웠다.
이런 FCC가 최근 2·3위 사업자의 M&A는 승인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경쟁을 통한 소비자 편익 향상 등 긍정적인 요인이 더 많다고 판단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경쟁력 있는 2위 사업자가 등장해 늘어난 가입자를 기반으로 양질의 콘텐츠 투자에 나서면 소비자 혜택이 많아질 것에 주목했다.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 합병은 차터와 타임워너간 M&A와 비슷하다. 현재 국내 1위 사업자인 KT는 지난해말 기준 IPTV와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를 합해 총 865만명의 가입자를 확보, 30%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합병을 추진 중인 SK브로드밴드는 349만명으로 12.1%, CJ헬로비전은 416만명으로 14.4%다. 양사가 합병할 경우 총 764만명의 가입자를 기록하며 1위인 KT와 어깨를 견줄만한 2위 사업자가 된다. 업계 관계자는 "미래부와 공정위가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 M&A 인허가 심사를 앞두고 차터와 타임워너 M&A 사례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KT "결합에 의한 지배력 전이 없어 FCC가 승인"
FCC의 결정은 최근 변화하는 세계적 추세를 반영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과거 정책당국들은 방송-방송, 통신-통신 등 동종업계의 M&A는 시장 경쟁자 수 저하와 독과점 가능성 등의 부작용을 우려, 불허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엔 상황이 달라졌다. 정책당국이 동종업계뿐 아니라 이종업계간 M&A가 경쟁 증대 및 소비자 편익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승인을 하는 게 세계적 추세다. 스페인 통신사 텔레포니카는 2014년 5월 방송사업자 카날플러스를 7억2500만유로에 인수했고, 미국의 통신사 AT&T도 다이렉TV를 485억달러에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최근 FCC가 차터와 타임워너간 결합 승인 가닥과 글로벌 추세에 대한 SK텔레콤과 KT·LG유플러스 측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의 M&A를 반대하는 KT와 LG유플러스측은 차터와 타임워너간 결합과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의 합병은 상황 자체가 다른 만큼 비교대상이 아니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김희수 KT경제경영연구소 부소장은 "차터나 타임워너는 한 시장에서 지배력을 가지고 있지 않고 따라서 결합에 의한 지배력 전이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승인된 것"이라며 "둘 다 무선이 없기 때문에 순수한 수평적 결합이라는 점도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 합병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케이블TV 시장에 국한된 이번 미국의 사례와는 달리 국내 사업자의 경우 이동통신서비스 등을 겸하고 있어 유료방송 뿐 아니라 전체 시장상황과 지배력 전이 등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반면 SK텔레콤 측은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 M&A는 KT가 독주하던 유료방송시장의 경쟁을 활성화해 사업자간 경쟁을 촉진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위와 경쟁할 수 있는 2위 사업자가 등장해 경쟁을 한다면 긍정적 시장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얘기다. 김형찬 SK경영경제연구소 정보통신2실장은 "미국에서 차터와 타임워너간 M&A가 승인되면 강력한 2위 사업자가 출현, SK브로드밴드와-CJ헬로비전 합병 이후 상황과 똑 같아진다"며 "FCC는 초고속인터넷 경쟁 촉진의 의미를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책당국이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의 M&A 인허가 심사를 앞두고 토론회, 공청회, 국민 의견수렴 등 다양한 여론 반영 절차를 거치고 심사 막바지단계에 와 있는 상태"라며 "SK텔레콤과 KT·LG유플러스가 첨예한 M&A 찬성과 반대 의견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 편익 강화를 위해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