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인터뷰]'서른둘'손흥민이 말하는 '손흥민 커리어'의 현재, "행복을 좇아 전광판 시계 안 보고 전력질주하는 중입니다"

사진(런던)=윤진만 기자[e-mail]

대략 엘리트 축구스타의 선수 수명은 길어야 20년. 십 대 중후반에 프로 데뷔해 서른 중후반에 은퇴하는 경우, 업계에선 그 선수를 두고 '성공적인 축구선수의 인생을 살았다'고 말한다. 영국축구협회(FA)가 추산한 프로 선수의 평균 활동 기간을 보면 20년이 얼마나 큰 숫자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8년이다. 대다수의 선수들이 힘겹게 프로 문턱을 넘고도 8년 이상 버텨내질 못한다.

'손세이셔널' 손흥민(31·토트넘)의 커리어는 현재 8년과 20년 그 사이 어디쯤 있다. 2010년 10월 30일, 함부르크SV(독일) 소속으로 18세 나이에 쾰른전에서 프로 데뷔한 손흥민은 어느덧 베테랑 축에 속하는 한국 나이 서른둘, 프로 13년차다. 13년이란 세월을 유럽 내에서도 손꼽히는 빅리그인 독일(5년)과 잉글랜드(8년)에서 보냈다. 분데스리가,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해 현재까지 479경기를 뛰어 171골을 넣었다. FIFA월드컵 본선만 3번 출전했다. 전세계 축구 역사를 통틀어서도 이만한 커리어를 쌓은 선수는 흔치 않다.

당장 은퇴한다고 가정할 경우 메이저 트로피를 들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13년이란 커리어만 돌아보면 '성공한 선수' 반열에 오를 것이다. 이 대목에서 문뜩 손흥민의 생각이 궁금했다. 자신이 지금 어디쯤 왔다고 느끼고 있을까. 애초에 프로 커리어 20년가량을 꽉 채우기로 마음먹었다면, 지금은 축구경기 기준 하프타임을 지나쳐 후반 15분쯤에 다다랐다. '30분' 정도 남았다. 반대로 정점에서 축구화를 벗을 계획이라면, '축구선수 손흥민'의 시간은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지난 6일, 영국 런던 토트넘홋스퍼스타디움에서 열린 맨시티와 리그 경기를 마치고 기자와 따로 만난 손흥민은 "경기를 하다 보면 순식간에 전반이 끝날 때가 있고, 정말 많이 뛴 것 같은데 시작한지 15분 밖에 안 지났을 때가 있다. 지금은 시간 안 보고 열심히 뛰어가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 전광판 볼 새가 없다"고 했다. '맨시티의 수비수 카일 워커를 어떻게 뚫을까, 어떻게 하면 한 수 위 전력을 지닌 맨시티를 꺾을까, 기나긴 골 침묵을 어떻게 해야 빨리 끊어낼까.' 손흥민은 고개를 들 여유없이 이와같은 눈앞의 현실에 '초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순간, 손흥민의 얼굴에선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함부르크 홈구장) 잔디 위를 전력질주하던 '18세 손흥민'이 스쳤다.

'18세 손흥민'과 '32세 손흥민'의 커리어는 비교불가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롤모델 삼아 부친의 혹독한 훈련을 이겨냈던 꼬마는 런던 저택에 사는 억만장자 슈퍼스타로 성장했다. 2021~2022시즌 득점왕에 올라 EPL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다. 손흥민은 "승패를 떠나 이런 기회를 받는 것 자체가 정말 행복하다. 어린아이가 꿈꾸던 현실이 매일 이뤄지고 있다. 나에겐 축구경기의 결과가 내 행복보다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 행복을 열심히 좇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일 가이'로 통하는 손흥민이 자주 웃는 이유도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일까. 안와 골절로 착용했던 안면마스크를 벗으면서 손흥민의 미소가 더욱 도드라진다. 시야를 확보한 만큼 플레이도 한결 간결해진다. 손흥민은 비록 맨시티전에서 득점하지 못했지만, 서너차례 폭발적인 스피드를 앞세운 스프린트를 선보였다. 기다리던 리그 5호골은 2주 뒤인 20일 웨스트햄과의 홈경기에서 터졌다. 손흥민은 "이제 부상 걱정은 다 끝났다. 얼굴 치료는 하지 않고 있다. (빡빡한 일정이 기다리는 만큼)근육을 안 다치게끔 예방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웨스트햄을 상대로 넣은 '승리 쐐기골'은 개인통산 프리미어리그 98호골이었다. 2015년 토트넘 입단한 손흥민은 254경기에 나서 98골-49도움을 작성했다. 2골 1도움만 추가하면 '100골 50도움' 클럽에 가입한다. 1992년 출범한 프리미어리그의 31년 역사를 통틀어 '100골 50도움'을 작성한 이는 18명뿐. '영혼의 파트너' 해리 케인(200골 45도움)도 아직 가입하지 못한 클럽이다. 손흥민은 "김칫국을 마시고 싶지 않지만, 좋은 기록을 세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릴 때부터 꿈꾸던 프리미어리그에서 그런 것(100골 50도움)을 이룰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골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팀을 도울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지금 존재 자체만으로도 유럽파 후배들의 정신적 지주다. 특히, 지난달 수원 삼성을 떠나 스코틀랜드 명문 셀틱FC로 이적한 오현규는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서 인연을 맺은 손흥민의 뒤를 따르는 후계자 중 한 명이다. 손흥민은 "조 하트(셀틱 골키퍼이자 토트넘 시절 동료)가 먼저 연락해 와서 오현규가 어떤 선수이고 어떤 친구인지 어떻게 환영할지 등을 물었다. 엄청난 레전드지만, 현규에게 관심을 보였다"며 "현규가 지금처럼 겁없이 도전하는 게 멋있다. 그런 모습을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기죽지 말고 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현규는 인터뷰 이후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12일 세인트미렌과 스코티시컵 16강에서 유럽 데뷔골을 터뜨렸다. 그로부터 8일 뒤, '유럽파 대장'도 골을 넣으며 손흥민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런던(영국)=윤진만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