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0-4→5-4' 역대급 명경기, 팬들은 '끝내줘요'-감독들은 '죽겠습니다'

윤진만 기자

기사입력 2019-06-24 17:59


강원 FC 선수들이 23일 춘천송암스포츠타운에서 열린 포항 스틸러스와의 K리그1 17라운드에서 후반 추가시간 결승골을 터뜨린 뒤 기뻐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역대급' 경기라고들 한다. K리그 최초로 0-4 스코어가 5대4로 뒤집혔으니 그럴만도. K리그1 최초 양 팀 선수가 동시에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더구나 강원 FC는 후반 25분 이후 5골, 후반 추가시간에만 3골을 터뜨렸다. 축구게임에서도 쉽게 나올 것 같지 않은 일, 보고도 믿기지 않은 일이 23일 춘천송암스포츠타운에서 벌어졌다. 강원 FC의 승리를 알리는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 25분 동안 경기장은 그야말로 충격의 도가니였다.

"25년을 살면서 이런 경기를 직접 해본 적 없다. 해외 경기에서나 봤다. 얼떨떨하다"는 강원 공격수 조재완(25)의 소감에서 경기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강원 라커룸으로 향하던 강원 선수 중 한 명은 "해외토픽감"이라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K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벌어진 4골차 뒤집기 명승부에 몇몇 해외 매체도 관심을 보였다. 2018년 5월 13일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와 스페인프리메라리가에서 동시에 5대4 경기가 나온 적이 있다. 토트넘 홋스퍼와 레반테가 각각 레스터 시티와 바르셀로나를 이 스코어로 제압했다. 하지만 4골을 먼저 주고 5골을 넣은 강원-포항전과 달리 득점을 주고받았다.

하필 이런 날 K리그 데뷔전을 치른 U-20대표팀 골키퍼 출신 이광연(19·강원)은 "끝나기 전 눈물이 났다. 형들에게 고맙고, 4실점한 게 미안해서"라고 말했다. 첫 경기라 긴장한 탓인지, 시작 57분 동안 4골을 내주고 웃지 못하던 그는 경기를 마치고서야 형들 품에서 활짝 웃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해외토픽 경기'에 흥분할 때(경기장을 찾은 포항팬 지인은 '뭐 이런 경기가 다 있냐ㅋㅋ'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강원과 포항 스틸러스의 두 수장들은 웃지 못했다. 다 잡은 승리를 눈앞에서 놓치며 4연패 늪에 빠진 포항의 김기동 감독(48)은 어두운 표정으로 "할 말이 없다. 오늘 반등하고 싶었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충격이 컸다.

헌데 5월 19일 성남 FC전(2대1) 이후 5경기만에 승리를 따낸 강원 김병수 감독(48)의 인터뷰 톤도 다르지 않았다. 기자회견실 테이블에 앉자마자 "기쁨과 슬픔이 왔다 갔다 했다. 솔직히 기쁘지 않다"고 말했다. 왜일까. "우리가 원하는 게임을 하지 못했다. (후반 12분만에)4골을 허용한 상태에서 감독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 벤치에 앉아있어도 산 게 아니다"라며 승리로도 가려지지 않는 '4실점'을 꼬집었다. 기적처럼 5골을 몰아쳤지만, 4골차를 뒤집는 이런 역전극이 또 나올 확률이 희박하다는 걸 산전수전 다 겪은 축구인이 모를 리 없다.

경기 전 선수에 대한 칭찬을 잘 하지 않는다고 직접 밝혔던 김 감독은 "작은 실수가 유발돼 계속해서 실점하고 있다. 반드시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자율적으로 열심히 뛰어준 선수들이 고맙지만, 분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트트릭을 기록한 조재완도 "선수들이 안이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4골을 먹은 것이다. 자칫 광연이에게 최악의 데뷔전이 될 뻔했다"고 말했다. 이광연은 "실점 상황이 어디서 시작됐든 마지막은 저로 끝난다. 실점했다는 게 굉장히 아쉬웠다. 오늘 많은 걸 얻었다. 훈련장에서 고쳐야 한다"며 "이 경기가 의지를 다잡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승패가 갈렸지만, 숙제는 두 팀 모두에게 주어졌다.
춘천=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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