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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K리그 우승 당시 이동국과 기쁨의 포옹을 하고 있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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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이었다.
돈 보따리를 앞세운 중국 구단들의 러브콜이 최강희 전북 감독(59)에게 밀려들었다. 전세기를 타고 날아와 최 감독에게 계약서를 내민 구단도 있었고, 총감독을 제의한 구단도 있었다. 당시 최 감독도 살짝 흔들리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최 감독이 자택에서 쉬고 있을 때 국제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핸드폰에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전화를 받자 "정의선 부회장입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단주였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은 중국 출장 중 최 감독이 상하이 상강, 베이징 궈안 등 복수의 중국 구단으로부터 구애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최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면담을 요청했다.
며칠 뒤 최 감독은 중국 출장에서 돌아온 정 부회장과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마주 앉았다. 당시 정 부회장은 "최 감독님, 계약기간이 몇 년 남으셨죠?"라는 농담을 건넸다고 한다. 최 감독은 지난 2015년 전북과 5년 장기계약을 했다. 1년6개월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그러면서 정 부회장은 "최 감독님께서 남은 기간 팀을 잘 이끌어 주십쇼"라는 말을 남긴 채 면담을 마쳤다.
최 감독은 애당초 선수들이 눈에 밟혀 중국 팀들의 러브콜을 고사하려 했다. 한데 정 구단주의 진심어린 한 마디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중국 팀 감독 제의를 거절했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정 부회장도 고심 끝에 새로운 도전을 택한 최 감독을 더 이상 막지 못했다. 사실 정 부회장은 지나 20일 K리그 6번째 우승 세리머니가 펼쳐진 인천과의 K리그1 33라운드에 참석하기로 했다. 경기가 끝난 뒤 최 감독은 정 부회장과 저녁식사 자리에서 중국행에 대한 결심을 밝히려고 했다. 그러나 정 부회장의 스케줄이 변경돼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면서 최 감독은 자신의 결단을 구단 고위관계자를 통해 구단주에게 전달해야 했다. 정 부회장도 계약기간이 남은 최 감독과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예의를 표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감독에게 정 부회장은 사실 '은인'이나 다름없다. 2005년 감독 경험 없는 자신에게 팀 지휘봉을 맡겨준 것도 놀라웠지만, 2009년 역사적인 K리그 첫 우승을 달성하기 전까지 팬들의 비난에도 최 감독의 축구를 변함없이 믿고 맡겨준 든든한 병풍 같은 존재였다. 게다가 이젠 K리그를 넘어 아시아 명품 브랜드로 자리잡은 최 감독표 '닥공(닥치고 공격)' 브랜드를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삼성이 스포츠계에서 발을 빼고 몸집을 줄여갈 때 모기업 현대차의 수익은 떨어져도 오히려 축구단의 지원은 크게 줄이지 않았던 뚝심 있는 구단주. 그런 정 부회장의 진심이 있었기에 그동안 차마 전북을 떠나지 못했던 최 감독. 선수단의 쇄신과 자신에 대한 새로운 도전길에 나서는 그의 마음에 잊지 못할 13년 간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될 것이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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