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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준의 발롱도르]리버풀의 색다른 실험, 스로인 코치는 우승을 안길 수 있을까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8-09-05 14:12


ⓒAFPBBNews = News1

축구는 발로 하는 스포츠다. 골키퍼만이 손을 사용할 수 있다. 필드 플레이어가 손을 쓰는 순간은 딱 하나다. 스로인(throw-in)이다. 터치라인을 나간 볼을 다시 그라운드로 보낼때는 손을 사용해야 한다.

한 경기에서 40~50번이나 나오는 동작이지만, 스로인은 보통 경기에 큰 영향을 주지도 않는 기술로 여겨졌다. 가끔씩 나오는 롱스로인 때나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은퇴한 현영민과 전북의 김진수가 롱스로인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롱스로인은 크로스 못지 않은 위력을 발휘할때가 있다. 2008~2009시즌 스토크시티가 그랬다. '인간 투석기' 로리 델랍을 앞세운 스토크시티는 스로인을 통해 53번의 슈팅과 8번의 득점을 만들어냈다. 유로2016과 2018년 러시아월드컵서 돌풍을 일으켰던 아이슬란드는 전직 핸드볼 선수 아론 군나르손의 스로인 기술을 적절히 활용했다. 하지만 몇몇 선수들의 특출난 재능에 의존했을 뿐, 스로인은 기술과 훈련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었다.

리버풀이 이 통념을 깨고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리버풀은 올 시즌을 앞두고 '스로인 코치' 토마스 그론마크를 데려왔다. 그론마크 코치는 리버풀 합류 전 독일 분데스리가의 샬케, 헤르타베를린, 덴마크의 미틸랜드 등에서 스로인 지도를 해왔다. 하지만 프리랜서 였지, 정식 코치는 아니었다. 리버풀은 그론마크를 '스로인 코치'라는 직함과 함께 정식 코치로 선임했다. 축구의 종가인 영국에서도 '스로인 코치'는 최초였다. 축구 기술이 점차 분업화되며 다양한 전문 코치들이 등장했지만, '스로인 코치'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영국 국영방송 BBC는 '축구계에서 가장 이상한 직업'이라고 할 정도 였다.

그론마크 코치의 영입은 위르겐 클롭 감독의 분석에서 시작됐다. 클롭 감독은 지난 시즌 경기를 분석하던 중 스로인에 주목했다. 경기당 50번 정도의 스로인 상황이 나오는데, 공이 던져진 후 소유권을 너무 자주 잃는 경향을 보였다. 처음에는 볼을 받는 선수들의 위치를 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로인 자체를 바꿔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론마크 코치는 세계 유일의 스로인 전문가다. 선수 시절부터 유명했다. 그는 51.33m라는 세계 최장 스로인 기록을 갖고 있다. 그는 '스로인'이라는 미지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론마크 코치는 "'내가 롱스로인을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서관과 인터넷을 통해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하지만 '스로인'을 전문적으로 다룬 자료는 없었다. 결국 스스로 전문가가 되기로 했다. 스로인 기술을 공부한 그론마크 코치는 강의를 하며 선수들을 가르쳤다.

그론마크 코치는 스로인에는 보이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으며, 잘 던진 스로인은 골로 이어질 수도, 심지어 팀을 구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론마크 코치는 스로인을 세가지로 분류한다. 롱스로인, 빠른 스로인, 영리한 스로인. 롱스로인은 직접적으로 골을 노리는데 유리하다. 그론마크 코치는 "미틸랜드 시절 롱스로인은 골을 넣는 무기였다. 정확한 기술, 전술적 인지만 잘돼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로, 정확하게 보내는 것이다. 그론마크 코치는 "높은 볼은 수비하기가 편하다. 일자로, 정확하게 볼을 보낸 후 함께 약속된 전술로 움직이면 그만큼 득점이 더 쉬워진다"고 했다. 실제 그가 지도했던 미틸랜드는 스로인 전술로 10골 이상을 기록했다.

재밌는 것은 스로인 거리가 간단한 연습만으로 금새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론마크 코치는 "간단한 기술과 유연성, 그리고 몸의 형태만 잡아줘도 비거리는 확 늘어난다"고 했다. 지금은 묀헨글라드바흐에서 뛰는 안드레아스 풀센은 그론마크 코치의 지도 아래 스로인 비거리를 25m에서 38m로 늘렸다. 다른 선수들도 비슷하다.

롱스로인이 가시적인 결과를 만든다면, 빠른 스로인과 영리한 스로인은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다. 빠른 스로인은 역습 형태를 만들 수 있고, 영리한 스로인은 상대의 압박에서 공을 지킬 수 있다. 역습과 탈압박은 현대축구의 키워드다. 이를 위해서는 공간창출이 필수다. 스로인이 그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론마크 코치의 주장이다. 그론마크 코치는 "빠른 스로인과 영리한 스로인은 경기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 심지어 스로인은 오프사이드도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스로인 코치? 나는 세계 최초의 킥오프 코치가 되겠다." 그론마크 코치 선임을 본 영국의 유명한 축구 분석가 앤디 그레이의 조롱이었다. 하지만 클롭 감독은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클롭 감독은 "그는 이미 팀에 변화를 줬다"고 했다. 그론마크 코치도 처음에는 앤드 로버트슨, 조 고메즈,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 나다니엘 클라인 등 윙백 위주로 가르쳤지만, 지금은 제임스 밀너, 사디오 마네, 조르지오 바이날둠 등도 스로인 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실제 리버풀은 지난 시즌에 비해 더 빠르고, 유려한 경기를 펼치고 있다. 아스널의 레전드인 이언 라이트는 "조 고메즈가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좋은 스로인을 하는 걸 봤다"며 "그론마크 코치가 고메즈에게 뭔가를 가르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세트피스에 많은 연구가 이어지는 것과 달리, 스로인은 아직 저평가되어 있다. 그론마크 코치의 주장대로라면 스로인은 공격전개의 한 축을 맡을 수도 있다. 리버풀이 축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리버풀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염원하던 우승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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