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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고 데 포지시온: 압박을 벗겨 라인을 하나씩 넘어간다.'
스페인은 월드컵을 하루 앞두고 감독을 교체했다. 그럼에도 흔들림 없이 B조 1위(1승2무)를 차지했다. 다만 상대를 흔들진 못했다. 스페인은 1일 열린 러시아와의 2018년 러시아월드컵 16강전에서 1대1로 비긴 데 이어, 승부 차기(3-4) 끝에 패했다. 박경훈 전주대 교수와 축구학과 분석팀은 스페인의 '포지션 플레이'를 분석했다. 완성된 수비조직이 눈에 띄는 이번 월드컵에서 그들은 '포지션 플레이'를 고집했다.
16강 러시아전도 경기를 주도했다. 4-2-3-1 포메이션으로 '이스코 시프트'가 핵심이다.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이스코는 섬세한 테크닉과 창의성을 갖췄다. 3선까지 이동하여 라인 사이 공간에 위치한 동료들과 주로 원투패스로 전진한다. 공간이 좁을 땐 좌우 측면으로 부지런히 이동한다. 발바닥을 잘 사용하며 상대의 접근을 기다린 후 직접 드리블로 제친다. 분석팀 데이터에 따르면 무려 볼터치 148회, 드리블 37회를 기록했다. 어태킹써드(그라운드 공격 1/3 지역) 진입의 키 플레이어였다.
문제는 점유율 이후의 파괴력이었다. 러시아는 5-3-2 수비조직으로 스페인의 PTA(PRIME TARGET AREA·페널티 에어리어 기준의 15m 구역으로 축구에서 가장 골이 많이 터지는 지역) 접근을 밀어냈다. 쉽게 공간이 벌어지지 않고 서로 커버하는 집중력이 돋보였다. 러시아는 120분 간 143㎞를 뛰었다. 스페인의 자체적인 원인도 여러 가지다. 원톱 디에고 코스타가 러시아의 촘촘한 수비 블록에 막혀 고립됐다. 더 종적인 움직임으로 센터백을 끌어내서 측면의 다비드 실바나 마르코 아센시오의 뒷 공간 침투를 유도해야 했다. 후반 막판 이아고 아스파스가 투입되며 활동량은 늘었지만, 연장전 스페인의 PTA 접근 횟수는 2회에 불과했다. 페르난도 이에로 감독도 특별한 용병술이나 전술 변화를 제시하지 못했다.
스페인의 딜레마다. 스페인어로 '후에고 데 포지시온'으로 불리는 '포지션 플레이'의 맹점이기도 하다. 스페인축구협회(RFEF)가 만든 이 축구 철학은 크루이프부터 내려온 개념이다. 압박을 벗겨 라인을 하나씩 넘어가야 한다. 높은 점유율은 현상일 뿐이다. 짧은 패스로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한 수단이다. 라인 사이에서 볼을 받기 좋은 위치에서 수적 우위 형성에 따른 우월성이 목표다. 수적 우위는 곧 압박에서 자유로운 선수의 존재를 의미한다. 득점과 승리 확률을 높이는 그들의 방법론이다.
문제는 스페인이 방법론을 목적인 것처럼 움직일 때가 있다. 이번 러시아전이 그랬다. 유로와 월드컵 우승 시절의 템포와 전진 패스의 비중을 잃었다. 전진하지 못하되 뺏기지도 않으며 패배 확률을 낮추려는 의도지만, 승리 확률을 높이지도 못했다. 연장 막판까지도 롱볼에 의한 상대 위험 지역 접근은 없었다. 러시아가 수비에 집중하고 스페인의 전진성이 사라졌기에 더 높은 점유율과 패스횟수(1137회)만 남겼다. 긍정적 의미를 담을 수 없는 데이터다. 포르투갈에 3골을 터뜨렸지만, 이란-모로코-러시아에 300분 동안 3골에 그친 건 의미하는 바가 크다.
스페인축구협회가 큰 변화를 주기는 힘들 것이다. 프리메라리가 대부분 팀이 구사하고 유스 시스템까지 뿌리내릴 만큼 정착된 방식이기 때문. 반면 대표팀 관점에선 메이저 대회에서 차이를 만들어주던 핵심 선수들의 나이가 많아졌다. 이미 헤라르드 피케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은퇴를 선언했다. 세르히오 부스케츠는 느려졌고 사비 에르난데스는 없다. 이스코의 능력을 극대화했듯이, 세대 교체를 통해서 디테일한 부분에 점진적 변화를 줄 확률이 크다.
이렇듯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스페인도 고민할 수밖에 없다. 포지션 플레이를 연구하는 전 세계 축구인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이번 월드컵은 강팀이 수비 조직을 잘 준비한 약팀에 대거 고전 중이다. 대한민국 대표팀 관점에선 월드컵 아시아 예선과 아시안컵에서 고생하던 최근 몇 년이 떠올랐다. 결국 축구 전술은 빠르게 돌고 있다. 이 시대에 맞도록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박경훈 교수, 전주대 축구학과 분석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