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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경의 J사커]50세 현역 미우라, 이동국에 주는 메시지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7-11-02 01:01 | 최종수정 2017-11-02 01:06


◇200골 고지에 오른 이동국의 모습을 내년에도 볼 수 있을진 미지수다. 지난 2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이동국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전주=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베테랑 골잡이 이동국(39·전북 현대)이 새 역사를 썼다.

전인미답의 개인통산 200호골 고지에 올랐다. 소속팀 전북의 5번째 우승에 쐐기를 박는 헤딩골, 본인은 물론 '포커페이스'인 최강희 전북 감독까지 두 팔을 치켜들고 환호했다. 20여년 간의 프로 생활. 숱한 고난을 딛고 쓴 드라마다.

이동국의 발걸음은 내년에도 이어질까. 본인은 신중해 보인다. 이동국은 대표팀 이야기가 나오자 울리 슈틸리케 전 A대표팀 감독의 발언에 빗대어 "제가 오래 뛰면 '한국축구 미래가 어둡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며 웃었다. 이어 "제게 내년은 아직 긴 시간이다. 대표팀도 그렇다. 올해 은퇴를 할 수도 있다고도 생각한다. 내가 경기할 수 있는 시간 안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첫번째다. 내년 생각은 접어두고 있다"고 고민을 드러냈다. 하루 뒤 신태용 A대표팀 감독도 "K리그의 영웅인 이동국을 아름답게 보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웅'이 '영웅'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선배의 절절한 마음이었다.


◇미우라 가즈요시는 50세가 된 올해도 현역으로 활약 중이다. 지난 2011년 동일본대지진 부흥 자선경기에 출전한 미우라가 득점 후 환호하고 있다. ⓒAFPBBNews = News1
이들의 발언을 들으며 떠올린 게 미우라 가즈요시(50·요코하마FC)다. 일본 축구의 브라질 유학파 1세대인 미우라는 화려한 발재간과 당돌함으로 무장한 선수였다. 일본 축구의 급성장을 대변하는 상징이었다. '숙적' 한국의 1호 경계대상이자 팬들에겐 공공의 적이었다. '가즈댄스'로 불린 요란한 골세리머니 탓에 '밉상'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50세가 된 올해도 여전히 그라운드를 달리고 있고, 이제는 한-일 양국 팬들의 응원을 받는 노장이다.


◇일본 언론들은 매 시즌 미우라의 일거수 일투족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역생활이 50세까지 이어지며 이제 세계 언론들이 관심까지 받고 있다. ⓒAFPBBNews = News1
매 시즌 미우라의 현역 연장 및 최고령 출전, 최고령 득점에 관심이 쏠린다. 미우라는 올 시즌에도 득점에 성공하면서 자신이 세웠던 최고령 득점 기록을 50세14일로 늘렸다. 시즌이 아직 마무리 되지 않아 최고령 출전 및 득점 기록은 현재진행형이다. 사실 그간의 성적만 놓고 따져보면 미우라의 활약상은 '평균 이하'다. 올 시즌 기록은 10경기 1골. '아들뻘' 후배들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벤치를 지키는 날이 더 많다. 2011년부터 2일 현재까지 요코하마FC가 속한 J2(2부리그) 110경기에 나서 9골에 그치고 있다. 그의 현역 연장은 '고집'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우라는 지난 2002년부터 매 시즌을 앞두고 개인팀을 꾸려 '개인 전지훈련'으로 팀 훈련을 이겨낼 몸을 만들어오고 있다. 팀 훈련에서도 다른 선수들과 똑같은 훈련을 소화하며 경쟁 중이다. 요코하마FC 소속으로 J2 경기에 출전한 미우라. ⓒAFPBBNews = News1
하지만 그가 이름값으로 현역생활을 이어온건 아니다. 오히려 그라운드에 서기 위해 몇 배의 노력을 기울인다. 미우라는 지난 2002년부터 매년 팀 동계훈련과 별개로 '개인 전지훈련'을 실시 중이다. "35세가 넘으면서 몸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 한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는게 이유다. 매년 사비를 털어 피지컬코치와 트레이너, 영양사, 매니저를 직접 고용, '개인팀'을 꾸려 괌으로 건너가 오전, 오후로 나눠 강도높은 훈련으로 시즌을 준비한다. 팀 훈련에서도 젊은 선수들과 똑같은 팀 훈련을 소화한다. 이마저도 부족한지 클럽하우스에 몇 시간 먼저 도착해 개인훈련을 한 뒤 팀 훈련까지 소화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권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일본 TV프로그램에도 자주 얼굴을 비추는 미우라를 향한 단골질문 중 하나가 '은퇴시기'다. 하지만 미우라는 "메이저리그(MLB)에서 뛰는 스즈키 이치로(마이애미 말린스)의 경기를 자주 본다. 그가 안타를 치고 진루할 때마다 나도 골을 넣겠다고 다짐한다"며 "언제 은퇴할지는 나도 모른다. 아마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때, 몸이 움직이지 않을 때가 아닐까"라고 열정을 숨기지 않는다.


◇미우라의 출전은 소속팀인 요코하마FC 뿐만 아니라 원정 팬들에게도 관심거리다. 요코하마FC에서 경기를 마친 뒤 팬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미우라. ⓒAFPBBNews = News1
미우라의 가치는 그라운드 바깥에서 더 빛난다. '요코하마FC는 미우라가 먹여살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미우라를 따르는 개인, 기업들이 구단과 스폰서십을 맺고 있다. 미우라 관련 구단 상품은 발매와 동시에 불티나게 팔린다. 홈경기 뿐만 아니라 원정팬들도 미우라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다. 미우라의 일거수 일투족에 주목하는 언론 덕에 요코하마FC도 덩달아 홍보 효과를 누린다. 단순한 기록 만으로 선수의 가치를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미우라 본인이 결심하지 않는 한, 내년에도 '현역 미우라'를 향한 관심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동국이 전북에 입단할 때만 해도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이동국은 최강희 감독의 믿음 속에 뼈를 깎는 노력으로 롱런에 성공했다. 지난 2009년 1월 12일 전북 입단식 당시 최강희 감독과 이동국. 스포츠조선DB

이동국의 오늘도 미우라처럼 땀으로 얼룩져 있다.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게으른 선수'로 낙인찍혔던 그는 2009년 전북에 입단할 때만 해도 부상, 해외진출 실패 속에 '한물간 선수'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최 감독은 "이동국이 실패하면 나도 떠난다"고 감쌌고 이동국도 뼈를 깎는 노력으로 그해 32경기서 22골을 기록하며 팀의 사상 첫 우승을 견인했다. 매 시즌이 고비였지만 젊은 후배들과 경쟁을 이겨내며 전북맨으로 거듭났다. 이동국이 몸담은 지난 8년 동안 전북은 성장을 거듭해 FC서울, 수원 삼성의 전유물이었던 '평균 관중 1만여명'의 금자탑을 쌓았고 K리그 최고 인기 구단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수 년간 이어온 투자의 결실이지만 이동국의 존재감과 그로 인한 흥행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이동국이 TV예능 출연으로 인기몰이를 하면서 올 시즌 전북도 나름대로 '특수'를 노렸다. 실력과 인기를 모두 잡은 이동국이 앞으로 전북에 몸담고 있는 것만으로도 파생효과는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동국도 언젠가는 그라운드를 떠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놓아주긴 너무 아깝다. 아직도 그가 K리그, 한국 축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50세 미우라처럼 마음껏 그라운드를 누비며 '한국 축구의 살아있는 역사'가 되어주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스포츠2팀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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