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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영국)=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결국 경질이었다. 불안불안하던 크리스탈팰리스는 EPL 4경기만에 프랑크 데 부어 감독의 목을 쳤다. 데 부어 감독은 부임한지 77일만에 경질됐다. 데 부어 감독 체제 아래에서의 크리스탈 팰리스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4경기에서 모두 패배했다. 단 한골도 넣지 못했다. 카라바오컵에서만 2골을 넣으며 승리하는데 그쳤다. 데 부어 감독은 EPL역사상 가장 적은 경기만에 경질된 감독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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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탈팰리스는 '롱볼'의 팀이다. 지난 시즌 샘 앨러다이스 감독은 극단적인 롱볼을 구사하며 팀을 강등 위기에서 건져냈다. 롱볼이 나쁜 것은 아니다. 확실한 장신 스트라이커가 최전방에 있고, 좌우에서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리는 선수가 있다면 위협적인 공격 방법이 될 수 밖에 없다. 앨러다이스 감독은 최전방 벤테케, 좌우에서 자하와 타운젠트. 이 두가지 카드를 활용했다.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욱여넣으면서 승점을 챙겼다. 그리고 잔류했다.
크리스탈팰리스는 올 시즌을 앞두고 잔류의 일등공신 앨러다이스 감독을 내쳤다. '롱볼 스타일'을 버리겠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데 부어 감독을 데려왔다. 그는 아약스의 리그 3연패를 이끌었다. 점유와 압박을 모토로 내걸었다. 소위 말하는 아약스 웨이였다. 크리스탈팰리스 수뇌부는 자신의 팀이 이런 축구를 하길 바랐다.
문제는 단조로움이었다. 벤테케의 머리가 떨궈줄 볼을 잡을 선수가 없었다. 2선의 선수들은 멍하니 볼만 쳐다보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 수비수들도 뻔히 다 아는 수였다. 수비에 번번이 걸렸다. 데 부어 감독이 가장 가치있게 여겼던 '점유'는 시작 단계에서부터 실패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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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부어 감독은 '원칙'을 강조한다. 축구는 팀스포츠다. 선수 개인에 의존하지 않는 축구. 팀정신이 충만한 축구가 바로 데 부어 감독의 축구였다. 그는 "뛰어난 스트라이커를 가졌다고 챔피언이 되지 못한다. 무엇이든 함께해야 한다. 개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것이 축구"라고 했다.
크리스탈팰리스 선수들은 이런 데 부어 감독의 철학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크리스탈팰리스의 주전 선수들은 저마다 다 자신이 에이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측면 공격수들이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주자가 안드로스 타운젠트다. 파워넘치고, 20~30미터 정도의 단거리에서 스퍼트가 좋다. 잉글랜드 A대표팀에서 자주 이름을 올린다. 치고 달린 뒤 크로스를 올리는, 잉글랜드식 '뻥축구'에 가장 특화된 선수다. 문제는 개인기가 어설프게 있다는 점. 실제로 타운젠트는 무리한 드리블을 치다가 패스 혹은 크로스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팀 전체의 공격 흐름을 끊어버리기 일쑤다. 타운젠트뿐만이 아니다. 자하나 펀천 등 주전 선수들 모두 자신의 공격 포인트에 집중하는 경향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데 부어 감독의 '원칙론'은 뿌리를 내리기 힘들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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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도 겹쳤다. 수비의 핵심 마마두 사코가 부상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데 부어 감독으로서는 수비에 큰 구멍을 안고 싸울 수 밖에 없었다. 자하 역시 1라운드 허더스필드전 직후 무릎 부상으로 팀에서 이탈했다.
그럼에도 데 부어 감독은 조금씩 팀을 만들었다. 다만 고비에서 불운에 울었다. 2라운드 리버풀전이 아쉬웠다. 리버풀의 공격을 막고 또 막았다. 73분간 막았다. 무승부를 거뒀다면 팀도 상승세를 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후반 28분 수비 상황에서 밀리보예비치를 맞고 굴절된 볼이 마네 앞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골. 크리스탈팰리스로서는 불운이었다.
4라운드 번리전도 아쉬웠다. 전반 3분만에 아쉬운 실수로 선제골을 내줬다. 운이 따르지 않았다. 이후 크리스탈팰리스는 파상공세를 펼쳤다. 점유율 64.7%. 슈팅수 23개. 이 가운데 4개는 유효슈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 골키퍼와 수비수들의 선방에 계속 걸렸다. 데 부어 감독과 크리스탈팰리스는 악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