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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라는 거함이 이대로 침몰하는 것일까.
거함의 침몰은 누구의 탓인가
배가 침몰하면 가장 먼저 책임을 묻게 되는 건 당연히 함장이다. 함장이 어떻게 지휘하는가에 따라 항해가 순조로울 수도, 암초에 부딪히고 험난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원들의 수준이 떨어져서 항해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도 경쟁을 통해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자들일 테고 함장이 직접 고른 자들이기도 하다. 거함의 침몰을 선원의 탓으로 돌리는 건 핑계 아닐까.
여기서 '이러한 부진이 비단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다', '선수와 자국 리그의 질적 하락이 원인이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한 주장이 틀렸다고 부정할 순 없다. 그러나 FW 멤피스 데파이, FW 빈센트 얀센처럼 실패한 득점왕들이 있는가 하면 MF 케빈 스트로트만, MF 조르지니오 바이날둠, DF 비르질 반 다이크 등 큰 무대에서 꾸준히 활약 중인 선수들도 있는 게 현재의 네덜란드다. FW 아르옌 로벤도 '아직도 로벤이야?'라는 이들도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이를 잊은 게 아니냐?'는 소리를 듣던 선수다. 결국 함장이 잘 이끌어주면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선원들인데 그러지 못했던 게 가장 큰 자초의 원인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2014년 여름, 브라질에서 '반 할의 아이들'이 만들어 낸 월드컵 성공 신화는 네덜란드의 장밋빛 미래를 예고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이러한 기회를 스스로 걷어 차버렸다. 새로운 옷을 입고 단추를 끼우는 과정에서 '3류 수준'의 행보를 보였다. 로날드 쿠만 감독을 내정했다가 갑자기 거스 히딩크 감독으로 방향을 틀었다.
히딩크 선임이 문제라기보다는 과정이 잘못됐다. 대표팀 감독을 기대했던 쿠만에게 갑자기 수석 코치직을 제의했다. 수석 코치로 히딩크 감독을 보좌한 뒤 그와 계약이 끝나는 2018년부터 대표팀 감독을 맡아달라는 게 네덜란드 축구협회의 새로운 제안이었다. 쿠만 감독으로선 무려 20년 전에 했던 일을 다시 하라고 하니 기가 찰 일이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최강희 감독에게 코치직을 제외한 격이다.
그렇다고 히딩크 감독이 팀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것도 아니다. 반 할 감독이 다진 세대교체의 초석을 잘 닦아도 모자랄 판에 이를 무시하고 대표팀을 암울했던 2012년으로 되돌려놓았다. 재임 기간이 짧았다고는 하나 히딩크 체제에서 대표팀에 데뷔한 선수가 1명(FW 바스 도스트)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팀을 바꾸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선택으로 한창 전진해야 할 팀이 오히려 4년 전으로 뒷걸음질 쳤다.
만약 쿠만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더라면? 체제가 개편되는 과정에서 부침이 있었을 수는 있겠으나 결국에는 팀 완성도를 높이고 나아가 팀 수준을 끌어올리면서 네덜란드의 건재함을 알렸을 것이다. 사우스햄턴과 에버턴에서 보여준 지도력이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결국 3년 전의 큰 실수가 네덜란드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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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축구협회도 히딩크 감독이 물러난 후에야 뒤늦게 위기라는 걸 직감, 부랴부랴 개혁을 단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유로 88 우승의 주역이었던 한스 반 브루켈렌이 테크니컬 디렉터로 부임했고 UEFA와 FIFA 위원직을 지낸 하이스 데 용을 제너럴 디렉터로 임명했다. 이어 다가올 여름에는 론 얀스(현 즈볼레 감독) 등 몇몇 축구계 인사가 합류해 힘을 보탤 예정이다.
소를 잃고 난 뒤에 외양간을 고치는 느낌이 있지만 이는 늦더라도 해야 할 일이다. 이름 값, 선수와 리그의 수준을 계속 이야기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유로 2016 예선에서 네덜란드를 꺾고 본선에 올라가 돌풍을 일으킨 아이슬란드, 불과 며칠 전 네덜란드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안겨준 불가리아가 네덜란드보다 자국 리그 수준이 더 뛰어나서 순위가 높고 스타들이 많아서 승리한 건 아니지 않은가. 근년의 부진을 단순히 그런 이유만으로 해석하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
결국 네덜란드는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대비해야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축구에 대한 사랑과 열정, 끊임없는 투자, 선수 육성의 교과서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체계적인 시스템 등 네덜란드 축구가 자랑하는 것들이 자리 잡고 있는 한 이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3년 전에 범한 실수만 되풀이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스포츠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