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는 민족성이 강한 스포츠다. 그라운드는 냉혹한 전장이다. 총성만 없을 뿐이다.
운명이 짓궂다. 2010년 남아공, 2014년 브라질 대회에 이어 2018년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에서도 이란과 만난다. 원정이 먼저다. 한국은 11일 오후 11시45분(한국시각) 테헤란 아자디스타디움에서 최종예선 4차전을 치른다. 내년 8월 31일에는 이란이 한국을 찾는다. 최종예선 9차전이다.
슈틸리케호가 7일 출국했다. 한국 축구는 이란과의 A매치 역대전적에서 9승7무12패로 열세다. 원정에서는 더 치욕적이다. 단 1승도 챙기지 못했다. 6차례 원정길에 올라 2무4패를 기록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도 2014년 11월 지휘봉을 잡은 후 첫 원정길에서 이란과 맞닥뜨렸다. 하지만 0대1로 패하며 악몽을 떨쳐내지 못했다.
감독은 전장의 사령관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진중해야 한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역전승'에 도취된 나머지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었다. "이란에 가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섭섭함을 극단적으로 토로했다고 하지만 엇나간 현실 인식은 우려스럽다.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축구와 만난 지 꼭 2년이 흘렀다. 지난해에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흙수저 선수'들을 기용하는 과감한 실험에 팬들은 열광했다. 전폭적인 지지도 받았다. 하지만 더 높은 벽이 기다리고 있기에 마냥 웃을 수도, 안주할 수도 없었다. 지난해의 경우 일정상 불가피했지만 한국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높은 팀과 충돌한 적이 없었다.
"팬들이 '갓(GOD)틸리케'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축구인으로 40년을 살아왔다. 아마 2연패만 당해도 이런 평가는 180도 달라질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지난해 11월 슈틸리케 감독이 한 말이다. '냉정한 인식'에 주가도 하늘을 찔렀다.
|
6일 수원에서 열린 카타르와의 3차전도 찜찜했다. 카타르의 9월 FIFA 랭킹은 85위로 한국(47위)보다 38계단이나 밑이었다. 최종예선에서도 2전 전패했고, 사령탑도 교체됐다. 객관적으로 봐도 낙승이 전망됐다. 그러나 홈이점은 없었다. 선제골을 터트렸지만 역전을 허용했고, 재역전에 성공했지만 홍정호(장쑤 쑤닝)가 퇴장당하며 수적 열세에 놓였다. 3대2로 승리했지만 우려스러운 승점 3점이었다. 만약 카타르의 홈이었다면 하는 불안한 기운이 휘감았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찬사와 격려를 바란 듯했다. 같은 말이라고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지구촌 어떤 감독이라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난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4강 신화를 선물한 후 한국 축구와 이별했다. 그 또한 '오대영'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슈틸리케 감독보다 더 험난한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는 현명하게 위기를 넘겼다. 한국 코치들에게 "한국말을 모르는 외국인 감독이어서 다행"이라며 웃어 넘겼다.
슈틸리케 감독은 여론의 추이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이야기가 주위에서 종종 들린다. 댓글까지 샅샅이 훑어본단다. 굳이 왜 지지를 안 보내느냐고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 최종예선은 이제 막 첫 단추를 뀄을 뿐이다. 앞으로 가야할 일이 더 많이 남았다. 비판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비판의 대척점에는 반전도 있다. 감독이든, 선수든 모든 것을 그라운드에서 이야기하면 된다.
"카타르를 이겼다고 들뜨지 말아야 한다." 이란전을 앞둔 이청용(크리스탈팰리스)의 이야기다. 이 말이 슈틸리케 감독의 입에서 나왔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관심이 없다면 우려도, 질책도, 비판도 없다. 슈틸리케 감독이 여론에 지나치게 흔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스포츠 2팀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 Copyrightsⓒ 스포츠조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