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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에게 차려진 마지막 '상암 밥상', 세 번의 눈물없다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5-10-29 07:46



차두리(35·서울)의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그는 올 시즌을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난다. '선수' 타이틀과 영원히 이별한다. 마침표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은퇴는 이미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그런데 25일 전북전(0대0 무)에서 방향이 또 틀어졌다. 차두리는 다음달 7일 수원과의 슈퍼매치가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누비는 마지막 홈경기로 예상했다. 스토리가 있는 최후의 안방 극장이 될 것으로 점쳐졌다. 2013년 4월 14일, 은퇴를 접고 K리그에 둥지를 튼 그의 국내 프로무대 데뷔전이 슈퍼매치였다. 당시 수원의 일부 팬들은 차두리가 볼을 잡을 때마다 야유를 보냈다. '화끈한 신고식'에 차두리도 '화답'했다. 슈퍼매치의 시계를 바꿔 놓았다. 수원에 절대적으로 밀리던 서울은 차두리가 가세한 후인 2013년과 2014년 5승1무2패로 슈퍼매치를 지배했다.

올 시즌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첫 대결에서 1대5로 대패했다. 차두리는 그 날 1-1 상황에서 부상으로 교체됐다. 차두리가 나간 후 서울은 후반 내리 4골을 허용했다. 9월 19일 가장 최근 슈퍼매치에서 한풀이를 했다. 차두리는 K리그 통산 2호골이자 쐐기골을 터트리며 팀의 3대0 완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그 경기가 차두리의 마지막 슈퍼매치가 됐다. 전북전에서 경고를 받은 차두리는 스플릿 세번째 라운드인 슈퍼매치에서 결장한다. 경고 3회가 누적돼 한 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다.

더 극적인 운명과 맞닥뜨렸다. 차두리의 마지막 홈경기가 앞당겨졌다. 상암벌에서 마지막으로 차려진 밥상이 바로 FA컵 결승전이다. 서울은 31일 오후 1시 30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인천과 2015년 KEB 하나은행 FA컵 우승컵을 놓고 최후의 대결을 벌인다. 만약 결승 상대가 인천이 아닌 전남이었다면 원정에서 결승전을 치러야 했다. 인천이 4강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전남을 2대0으로 물리치며 결승전이 상암벌에서 열리게 됐다.

차두리는 국내에서 단 한 번도 우승컵을 들지 못했다. 문턱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첫 해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결승에 올랐지만 광저우 헝다(중국)에 원정 다득점(2대2 무·홈, 1대1 무·원정)에서 밀리며 눈앞에서 정상 고지를 밟지 못했다. 그는 광저우의 그라운드에서 아픈 눈물을 쏟아냈다. 진한 아쉬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지난해 FA컵 결승전도 악몽이었다. 상대가 성남이라, 우세가 점쳐졌다. 하지만 120분 연장혈투 끝에 득점없이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2-4로 무릎을 꿇었다. 눈물도 말랐다. 그는 성남의 우승 세리머니를 그라운드에서 지켜봐야 했다.

마지막 길, 마지막 홈경기에서 국내무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릴 기회를 다시 잡았다. 차두리는 삼세번의 심정이다. '세 번째 실패는 없다'며 그 날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팀 환경은 지난해와는 또 다르다. 결승전을 앞둔 들뜬 분위기는 없다. 주장 차두리에게 마지막 우승을 선물하자며 똘똘 뭉쳤다.


차두리의 K리그 길을 연 최용수 서울 감독은 "슈퍼매치를 뛰지 못하는 두리가 뛸 수 있는 경기는 아쉽게도 3경기밖에 없다. 선수들은 물론 코칭스태프도 두리가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바라고 있다"며 "두리는 자기를 버리고 늘 팀을 위해 헌신했다. 우승으로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 토요일 결과로 두리의 마지막 가는 길이 아름답게 채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고요한(27)과 윤일록(23)은 이구동성으로 "두리 형은 팀 개개인 모두를 잘 챙겨주고 어떻게 하면 팀 분위기가 좋아질까 고민한다. 항상 고맙고 배우는 점이 많다. 두리 형이 꼭 FA컵 우승컵을 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올 시즌 여름이적시장을 통해 서울에 입성한 다카하기(29)도 "차두리가 팀 적응에 많은 도움을 줬다. 우승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찬스다. 선수들도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우승컵을 마지막 선물로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서울 팬들은 마지막 홈경기에서 차두리를 위한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두리형 가지마 ㅠㅠ', 팬들의 바람은 현실이 됐다. 1년 재계약했다. 그는 올초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경기력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그만두는 날, 팬들이 아쉬워하는 선수로 남는 것이 목표"라며 웃었다.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은퇴하는 차두리는 후배들의 귀감이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최후의 홈경기에서 '해피엔딩'을 꿈꾸고 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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