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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 그토록 바라던 K리그 데뷔골이었지만…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5-07-13 07:16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끝이 얼마남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1%의 여백을 채우고 있다. 욕심을 내지 않았지만 미련은 버리지 못했다. 골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K리그 데뷔골이 터졌다. 그러나 그는 웃을 수 없었다.

올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는 차두리(35·서울)가 마침내 K리그에서 골 맛을 봤다. 차두리는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15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2라운드 포항과의 홈경기에서 전반 종료 직전 K리그 1호골을 쏘아올렸다.

순도 높은 동점골이었다. 0-1로 끌려가던 전반 종료 직전이었다. 아크 정면의 고요한에서 시작된 패스가 정조국에게 연결됐다. 정조국은 박주영과의 2대1 패스를 거쳐 왼발슛으로 연결했다. 그의 발을 떠난 볼은 포항 골키퍼 신화용의 몸에 맞고 오른쪽으로 흘렀고, 쇄도하던 차두리에게 걸렸다. 오프사이드를 교묘하게 뚫은 차두리는 침착하게 오른발 슛으로 골네트를 갈랐다.

차두리에게는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무엇보다 어렵게 데뷔한 K리그였다. 그는 2012년 연말 잠시 은퇴를 했다. 독일에서 제2의 인생을 설계하며 학교에 다녔다. 훈련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팬들이 그의 은퇴를 말렸다. "독일에서 만난 한국 분들이 모두 똑같은 말을 많이 해주셨다. 꼭 한국에 가서 공을 차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고 하셨다. 다시 생각해보니 팬들이 있어서 내가 여기까지 왔다. 팬들의 말이 심경에 변화를 주는 가장 큰 계기가 됐다." 그와 손을 잡은 팀이 FC서울이었다. 2013년 4월 K리그와 처음 만났다.

올 해가 K리그에서 세 번째 시즌이자 마지막이다. 올초 1년 계약을 연장한 차두리는 2015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기로 했다. 태극마크도 이미 정리했다. 차두리는 3월 31일 뉴질랜드와의 친선경기를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이야기는 또 있다. 스포츠조선은 다음 날인 4월 1일 차두리와 단독인터뷰를 가졌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골에 대한 사연도 많았다. 아버지 차범근도 중심에 있었다.

"클롭 감독이 마인츠를 이끌 당시 측면수비수로 영입 제의를 했고, 포지션을 바꿨다. 아버지의 그늘이 워낙 컸다. 아버지의 골에 환상이 있었다. 하지만 빠르다보니 찬스는 많이 생겼지만 골을 못 넣으니까 부담과 압박감이 있었다. 경기가 재미없어지면서 두려웠던 시간이었다. 수비로 전환하면서 골은 안 넣어도 되니 큰 부담이 덜어졌다. 물론 수비도 골을 안 먹어야 하지만 골을 넣는 것보다 안 먹는 것이 더 편했다." 공격수에 출발한 차두리가 2006년 수비수로 보직을 변경한 배경이다.

수비수는 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독일 분데스리가, 스코틀랜들에서 뛸 때는 잊혀질 만한 순간 골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래서 던진 마지막 질문이 K리그 데뷔골이었다. 차두리도 웃었다. "매년 1골씩은 넣었다. 서울에 오고나서 유독 골이 안 들어가더라. 골대를 맞고 나오기도 하고…. 그래도 끝나기 전에 1골을 넣고 싶은 심정이다." 바람이었다. 차두리의 골소식을 기다린 것은 최용수 서울 감독도 마찬가지다. 최 감독은 최근 "올스타전에서라도 K리그 데뷔골을 넣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클래식 22라운드는 K리그 올스타(17일·안산) 직전 마지막 경기다. 차두리는 최다 득표(12만5929표)로 올스타전을 함께한다. 운명의 장난처럼 올스타전을 앞두고 '골 한'을 털어냈다. K리그 70경기 출전 만에 터트린 첫 득점이었다. 정식 경기에서는 셀틱(스코틀랜드) 시절인 2012년 4월 22일 마더웰전 이후 3년 2개월여 만에 터진 골이었다. 프로 통산 21번째 골이었다.


골만큼 '세리머니'도 눈에 띄었다. 진정한 프로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전반 종료 직전의 인저리타임이라 첫 골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동점 상황이라 세리머니 대신 볼을 주워 센터서클을 향해 달렸다. 볼을 던진 후에야 비로소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아픔은 남았다. 서울은 차두리의 데뷔골을 지키지 못했다. 후반 9분 이웅희의 슈팅이 크로스바를 강타한 후 길을 잃었다. 포항에 2골을 헌납하며 1대3으로 완패했다.

동점골이 역전승의 발판이 되길 염원했던 차두리의 입장에선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차두리는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팀이 패배한 마당에 자신의 골을 내세울 수는 없었다. 말없이 버스에 오르는 차두리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래도 역사는 역사다. 차두리의 K리그 골은 기록으로 영원히 남는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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