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차두리 단독인터뷰 "아버지는 경쟁 상대, 축구는 놀이터"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5-04-02 08:22


지난 3월31일 뉴질랜드전을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한 차두리가 구리 GS챔피언스파크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2001년 A매치 데뷔 이후 14년 동안 국가대표를 지낸 차두리는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 생활을 마무리 할 예정이다. 밝은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차두리.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5.04.01

그는 떠났다. 하지만 흔적은 결코 지울 수 없다. 그가 태극마크와 함께 걸어온 13년 143일의 시간은 생생하게 가슴에 남았다.

뉴질랜드와의 A매치를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차두리(35·서울)가 1일 일상으로 돌아왔다. 전날 밤 그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은 3만3000여명의 기립박수 속에서 태극마크와 이별했다. 아쉬움과 고마움이 교차했고 그는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끝이 아니다. 차두리는 소속팀인 FC서울로 돌아왔다. 서울과 1년 계약을 연장한 그는 올 시즌을 끝으로 완전 은퇴한다. 쉼표도 사치다. 4일 오후 2시 안방에서 벌어지는 제주와의 2015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4라운드에 대비, 경기도 구리 GS챔피언스파크에서 열린 훈련에 합류했다. 스포츠조선은 이날 차두리와 단독인터뷰를 가졌다.

은퇴식을 치른 지 24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팬들이 선사한 추억 속을 거닐고 있는 듯 했다. "피곤하다. 잠도 많이 못 잤다. 어제 같은 밤이 매일 오는 것도 아니고, 생각도 많이 했다. 경기 후 후배들과 함께 밥을 먹고 좋은 이야기를 나눴다. 솔직히 대표팀 은퇴가 실감나질 않는다." 섭섭한 표정이 역력했다.

팬들은 차두리의 은퇴가 아쉽다. 현재가 전성기라는 말이 똑 떨어질 정도로 그의 기량은 만개했다. 체력도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까지 충분히 가능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왜 은퇴를 결정했나.

열정인 것 같다. 후배들에게 열정적으로 모든 것을 쏟아부으라는 이야기를 줄곧 해왔다. 하지만 내 안의 열정이 조금 사그라들지 않았나 싶다.

-슈틸리케 감독이 은퇴를 만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님이 다시 한 번 물어봤다. 은퇴하는 게 맞느냐고. 맞다고 했다. 대표팀은 이제 러시아월드컵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러시아월드컵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지금 자리를 비워주고 월드컵에 나갈 수 있는 선수가 뛰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했다. 감독님이 러시아월드컵까지 1년 주기로 계획을 짤 수 있다고 말했지만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다.

그는 늘 그랬다. 축구를 위해서는 단 한 번도 타협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던졌다. 대의를 위해서는 자신도 되돌아보지 않는다. "감독님이 페널티킥을 차라고 했고, (기)성용이와 (손)흥민도 그랬다. 리드하는 상황이었으면 찼겠지만 끝까지 진지하게 이기는 게 중요했다. 정상적으로 원래 차는 사람이 차는 것이 맞다." 뉴질랜드전 전반 38분 상황을 설명한 것이 현주소다.

뜨거운 눈물도 화제다. 클라이맥스는 한국 축구의 레전드인 아버지 차범근 전 수원 감독과의 포옹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애국가가 흘러나올 때부터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 같더라.

축구 선수들은 대표선수가 돼 애국가를 부르는 것이 가장 큰 꿈이다. 하지만 난 마지막이었다. 마음이 짠하고 뭉클했다. 하지만 경기 전에는 경기에 집중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마지막까지 좋은 경기력으로 떠나고 싶었다. 전반전이 끝난 후 한숨을 돌리고 나니까 정말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포옹하면서 어떤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

'수고했다'면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축구하기는 힘든 것이다. 넌 복받은 것이다. 평생 감사하면서 살아라'고 말씀해 주셨다.

-어제 롤모델인 아버지가 조금은 미웠다고 했다. 정말 그랬나.

어렸을 때부터 롤모델이었다. 이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것이 정해져 있었다. 독일에서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나이를 들면서 넘을 수 없는 선수인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얼마나 힘들게 노력하고, 열심히 했을까. 존경심도 생겼다. 한편으로는 경쟁이었다. 이기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기기는 커녕 근처에도 못 갔다. 내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한 집안에서 아버지를 닮고 싶은 것은 쉽지 않다. 묘한 감정이었다.

-축구 선배 차범근과 아버지 차범근은 다를 것 같다.

다르다. 축구로서는 완벽을 원하시고, 안되는 것을 아시면서 완벽을 기준으로 설명한다. 끝이 없다. 은퇴를 하는 지금까지도 매경기 이것, 저것 지적을 받는다. 발전시키고 지금까지 올 수 있는 채찍질이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버지 차범근은 특별했다. 난 아버지를 사랑하는 아들이다. 따뜻하고 자식을 위해서는 뭐든지 하시면서 올바른 삶의 방향을 가르쳐 주신다. 나는 따라갈 수 없다. 아버지는 축구가 먹고 살기 위한 존재였고, 살아남기 위한 전쟁터였다. 하지만 난 아버지와는 다르게 축구를 즐겼다. 축구가 놀이터였다.

-여덟 살때 아버지의 마지막 은퇴경기에서 벤치에 앉았다는데.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아버지처럼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독일 남자들은 모두가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것이 꿈이다. 아버지가 선수였고, 가깝게 분데스리가를 경험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나 또한 꿈이 바뀐 적이 없다. 그 때는 분데스리거는 당연히 되는 줄 알았다(웃음).

-꿈을 이뤘다. 2002년 월드컵 후 독일 진출에 성공했다.

맞다. 첫 경기 하던 날 큰 꿈을 이뤘구나라고 생각했다. 꿈이 이뤄진 순간 뿌듯하고 행복했다.


지난 3월31일 뉴질랜드전을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한 차두리가 구리 GS챔피언스파크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2001년 A매치 데뷔 이후 14년 동안 국가대표를 지낸 차두리는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 생활을 마무리 할 예정이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차두리.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5.04.01
차두리는 이날 '은퇴 선배'이자 친구 박지성과 저녁을 함께했다. 둘은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4강 신화와 사상 첫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을 함께 이뤘다. 박지성은 "수고했다"는 말로 절친의 퇴장을 아쉬워했다. 두 차례의 월드컵, 차두리의 롤은 달랐다. 첫 번째 무대는 공격수, 두 번째는 수비수였다. 차두리는 2006년 공격에서 수비로 보직을 변경했다.

-되돌아보면 포지션 변경이 나쁘지 않았던 선택이었던 것 같다.

프랑크푸르트에 있을 때 풍켈 감독이 수비수로 2경기 정도 시험을 했다. 경기장을 앞에 놓고 트인 상태에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경기력이 괜찮았다. 그러다가 프랑크푸르트와 계약이 끝났다. 현재 도르트문트 감독인 클롭 감독이 마인츠를 이끌 당시 측면수비수로 영입 제의를 했고, 포지션을 바꿨다. 아버지의 그늘이 워낙 컸다. 아버지의 골에 환상이 있었다. 하지만 빠르다보니 찬스는 많이 생겼지만 골을 못 넣으니까 부담과 압박감이 있었다. 경기가 재미없어지면서 두려웠던 시간이었다. 수비로 전환하면서 골은 안 넣어도 되니 큰 부담이 덜어졌다. 물론 수비도 골을 안 먹어야 하지만 골을 넣는 것보다 안 먹는 것이 더 편했다.

-납득할 수 없지만 축구 인생은 3대5로 졌다고 했다. 그럼 대표선수로는 몇 점을 주고 싶나.

(한참을 생각하다)85점쯤 될 것 같다. 대표선수가 됐다는 것 자체로 많은 점수 받을 만하다. 아무나 대표선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월드컵 두 번, 아사인컵에는 세 번 출전했다. 성적도 좋았다. 그래서 85점이다(웃음).

-어떤 국가대표로 기억에 남고 싶나.

항상 대표팀을 위해서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뛰었다. 열정적으로 내가 잘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난 최고로 잘 한 선수는 아니다. 최고는 아니지만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다.


지난 3월31일 뉴질랜드전을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한 차두리가 구리 GS챔피언스파크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2001년 A매치 데뷔 이후 14년 동안 국가대표를 지낸 차두리는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 생활을 마무리 할 예정이다. 밝은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차두리.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5.04.01
가야할 길이 남았다. 이젠 K리그에서 마지막 선수 생활을 불태워야 한다. 서울은 K리그에서 3연패의 늪에 빠졌다.

-서울에서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나.

당장 팀이 어려운 상황이다. 빠져나가는 것이 첫 번째 과제다. 그리고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경기력으로 마지막까지 하고 팬들이 아쉬워할 수 있는 선수로 그만두고 싶은 것이 목표다. 후배는 물론 팬들로부터 '더 해도 되는데, 충분히 할 수 있는데'라는 말을 들으며 그만두고 싶다. 내가 갖는 동기부여다.

-박주영이 복귀전을 앞두고 있다.

차근차근 잘 준비하고 있다. 운동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이로 보나 능력이나 정말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선수다. 주영이도 대표팀과 한국 축구를 위해 한 번 더 큰 일을 해줘야 하는 선수다. 많은 사람들이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가진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K리그에서 1골도 없는데.

(웃으며)매년 1골씩은 넣었다. 서울에 오고나서 유독 골이 안 들어가더라. 골대를 맞고 나오기도 하고. 그래도 끝나기 전에 1골을 넣고 싶은 심정이다.

차두리는 '차미네이터'로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는 '기계'는 아니지만 '특별한 인간'이었다. "특별하다면 누구보다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접했다. 또 어느 누구보다 축구를 사랑하고, 좋아했다."

차두리의 '축구 여정'은 계속된다.
구리=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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