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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에다 스케이트를 신으면 꾸밀 데가 없었다.
이상화(25·서울시청)가 드디어 출발대에 선다. 11일 오후 9시 45분(이하 한국시각)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시작되는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 출전한다. 라이벌은 자신 뿐이다. 귀를 닫았다. 외부의 기대와 칭찬이 독이 될 수 있다. "세계신기록을 연달아 세우다보니 금메달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것 같다. 그래서 더 주변의 의식에 흔들리지 않으려 한다. 내 자신만 바라보고 있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을 것이다."
4년 전 밴쿠버에서 500m의 물줄기를 틀어놓았다. 난적 예니 볼프(35·독일)를 마침내 넘어섰다. 1·2차 레이스 합계 76초090의 기록으로 2위 볼프에 단 0.05초 앞서며 간발의 차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작이었다. 자만하지 않았다. 새로운 4년을 향해 다시 전진했다. 분위기는 또 달라졌다. 이상화를 넘어설 스프린터는 없다는 것이 소치 현재의 분위기다. 기록이 말해준다. 이상화는 지난해 네 차례나 여자 500m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2연패를 달성하는 등 절정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관전포인트는 또 있다.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재작성할지도 관심이다. 이상화가 보유한 세계기록은 지난해 11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연출한 36초36이다. "기록보다 순위가 우선"이라고 했지만 내심 기대하고 있다. 이상화를 지도하는 단거리 스피드스케이팅의 케빈 크로켓 코치는 8일 "기록을 말해줄 수 없지만 상화가 소치에 온 이후 베스트 성적을 냈다"며 기뻐했다.
호재는 또 있다. 들쭉날쭉한 빙질이 개막 후 안정을 찾았다. 크로켓 코치는 소치 입성 직후 "빙질이 불완전해 세계기록을 내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에는 "속도가 나지 않는 빙질이었는데 다시 바뀌었다. 상화도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어 기뻐하고 있다"며 웃었다.
실제로 9일까지 경기를 치른 남자 5000m와 여자 3000m에서는 기록이 좋아졌다. 지난해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6분14초41의 기록으로 남자 5000m 우승을 차지한 스벤 크라머(네덜란드)는 6분10초76의 올림픽 신기록을 작성하며 정상에 섰다. 여자 30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레너 뷔스트(네덜란드·4분00초34)도 1년 전 같은 곳에서 세운 기록(4분02초43) 보다 2초 넘게 줄였다. 다른 경기장의 코스 기록과 비교해 보면, 독일 베를린이나 러시아 콜롬나의 경기장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상화는 베를린에서 열린 올시즌 월드컵 4차 대회 500m 1차 레이스에 참가했다. 기록은 37초36. 순위는 당연히 1등이었다.
중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 위징(29)이 부상으로 불참하는 것도 호재다. 2012년과 올해 세계스프린트선수권에서 정상에 오른 위징은 2012년 1월 36초94의 세계기록으로 여자 500m 사상 최초로 37초의 벽을 무너뜨렸다. 이상화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위징이 우승하면서 견제한 건 사실이기에 다소 마음이 놓이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잘 타는 다른 선수들도 많다. 방심하지는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밴쿠버에서 메달을 못 땄다면 더 떨렸을 것이다. 그때보다는 편하다. 하지만 떨리는 건 사실이다. 서두르면 실수할 수 있다. 평정심을 갖고 하던 대로 하겠다."
11일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는 이(李)변이 없는 한 '상화의 날'이다.
소치(러시아)=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