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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클라시코(레알 마드리드-FC바르셀로나), 올드펌 더비(셀틱-레인저스) 등 세계 축구계에는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경기가 존재한다. 한국과 일본 양국 축구팬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더비는 단 하나, 한-일전이다. '숙명의 라이벌전'이라는 확고한 위상은 반세기 동안 흔들림이 없다.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을 두고 맞붙었던 한국과 일본이 여자청소년월드컵(20세 이하) 4강 티켓을 놓고 외나무 다리 결전을 앞두고 있다. 꼬박 20일 전이다. 동해를 사이에 둔 양국에 환희와 탄식이 교차했다. 과연 여동생들의 대결에서는 누가 웃을까.
일본은 오만해 보일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 8강 상대로 한국이 결정되자 거침없는 입담이 쏟아졌다. "한국 선수 한 두 명 쯤은 드리블로 충분히 제칠 수 있다"던가 "한국은 쉬운 상대라고 생각한다"는 등 선수들이 앞다퉈 도발에 나섰다. 지난해 승리의 기억과 2011년 독일여자월드컵 우승, 런던올림픽 은메달로 높아진 일본 여자 축구의 자신감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우경화가 가속화 되면서 최근 한-일전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일본 국내 정서도 하나의 요인이다. 두 팀의 상반된 분위기가 실제 승부에서 어떤 효과로 발휘될 지가 관건이다.
약속의 땅 카디프, 일본 축구의 심장 도쿄
상황은 바뀌었다. 30일 한-일전이 펼쳐지는 장소는 일본 축구의 심장인 도쿄국립경기장이다. 일본 대표팀이 굵직한 국제대회를 치를 때마다 사용하는 경기장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학도병 동원장을 비롯해 1964년 도쿄올림픽 개막 등 일본 근현대사를 대변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 곳에서 열리는 한-일전은 일본 입장에서 최고의 이벤트다. 첨예하게 대립 중인 양국의 정치 상황과 일제의 상징인 욱일승천기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관심도는 A대표팀 맞대결 못지 않게 치솟았다. 한국 여자 A대표팀은 2007년 6월 3일 도쿄국립경기장에서 가진 일본과의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1대6 참패를 당한 바 있다. 언니들의 한을 동생들이 풀어줄 지 지켜볼 만하다.
히든카드와 불안 요소는?
모든 패를 내놓고 싸우면 패할 수밖에 없다. 승부처에 쓸 히든카드가 필요하다. 한국은 차세대 공격수 여민지(19·울산과학대)의 발에 기대를 걸고 있다. 19일 나이지리아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서 부상한 뒤 나머지 두 경기를 쉬었다. 일본전을 앞두고 훈련에 참가하면서 컨디션을 끌어 올리고 있다. 하지만 왼쪽 발목이 아직 100%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려워 선발출전보다는 후반 승부처에서의 교체 가능성이 엿보인다. 삼바군단 브라질을 상대로 멀티골을 몰아치며 주목을 받은 전은하(19·강원도립대) 역시 히든카드로 손색이 없다. 일본에 대한 분석을 마친 정성천 감독의 용병술도 숨은 무기다. 요시다 히로시 일본 감독은 조별리그 세 경기 동안 한 번도 투입하지 않았던 가토 지카(18·우라와)를 한국전에 내세울 전망이다. 가토는 2년전 트리니다드토바고 월드컵 결승에서 한국 골망을 가른 선수다. 산케이스포츠와 닛칸스포츠 등 일본 주요 스포츠지들은 28일 한국전 대비 훈련에서 자체 연습경기를 실시한 일본팀 소식을 전하면서 '가토가 한국전에서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기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1m52의 단신이지만, 순간 돌파 능력이 좋은 선수로 꼽힌다. 4골2도움으로 팀 내 최다 공격포인트를 자랑하는 다나카 요코(19·고베 아이낙)는 최고 경계 대상이다.
감추고 싶은 약점도 서로 갖고 있다. 한국은 수비다. 개인기를 앞세운 일본 공격진에 고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나이지리아전에서 경험을 쌓았으나, 8강이라는 특수한 분위기 속에 교훈을 살릴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일본은 스피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정 감독은 "조별리그 세 경기를 분석해보니 일본이 그렇게 빠른 팀은 아니었다.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내다봤다.
도쿄=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