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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신덕현씨 "영록아, 어서 그라운드 서야지"

국영호 기자

기사입력 2011-06-27 20:10


애지중지 키운 자식이 심장마비로 사경을 헤맬 때 부모는 어떤 생각이 들까. 모르긴 몰라도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신영록의 아버지 신덕현씨()는 그렇게 49일을 살았다.

그러던 그가 50일째 활짝 웃었다. 27일 제주한라병원측이 아들의 의식 회복 공식 발표가 있자 안도하며 그제서야 잃었던 웃음을 되찾았다.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니까 나중에 얘기합시다"는 신씨를 병원 앞뜰에서 만났다. 한사코 인터뷰를 꺼려왔던 신씨는 병원측의 공식 발표 직후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었다. 이날 오전 전화를 걸 때만 하더라도 간단하게 대답만 하고 핸드폰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던 신씨였다. 그는 말하는 내내 골 넣고 환호하던 신영록이 짓던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는 "영록이가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한 12세 이후에 이토록 오래도록 같이 있던 적이 없었다. 12년이 흐른 뒤에 아들을 곁에서 지켜보게 됐다"며 "치료를 위해 영록이 옷을 벗겼을 때 어디 이상이 없는지 몸 구석구석을 보게 됐다. 골격 생김새가 내 몸과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 안타까워했다"고 했다. 그는 바지를 걷어올려 볼록나온 종아리를 보여주며 "영록이가 나 보다 더 종아리가 굵었는데 지금은 그 근육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다. 건드려보면 출렁출렁 살 밖에 없다"고 아쉬워하면서 "하루 빨리 운동을 시작해서 다시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식의 죽음 보다 더 큰 슬픔은 없다고 했다. 실제로 신씨가 그런 마음으로 49일을 보냈다. 언제나 희망을 품었지만 혹시나 하는 기분 나쁜 생각이 들어 잠이 오지 않았다. 가끔 막걸리에 기대 오지 않는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는 "일주일, 열흘, 한달이 지나자 다들 신영록이 의식을 회복할 가망이 없다고 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런 시간이었겠지만 나와 와이프(전은수씨)에게는 많은 꿈을 꾸게 해준 시간이었다"고 했다.

신씨는 그동안 매일같이 앉았던 병원 앞뜰 벤치가 이날 만큼은 달라보인다고 했다. 그는 "이 곳 벤치에 수도 없이 내려와 앉았다. 병실에 있으면 울적해지고 마음이 무거워 이 곳에서 바람을 쐬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며 "오늘은 정말 색다른 기분으로 앉아있다"며 웃어보였다.

벤치에 앉아 지난 50일을 되돌아봤다. 가장 기뻤던 때와 슬펐던 때를 묻자 하나씩 대답했다. 그는 "영록이가 의식을 찾은 뒤 처음했던 말이 '엄마'였다. '아프니까 주물러줘'라는 말도 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고 했다. 이어 "입원한지 얼마쯤 됐을까. 영록이 몸에 갑자기 곰팡이균이 퍼졌다. 눈 앞에 캄캄했다. 피가 통하지 않는지 발 끝부터 시퍼렇게 물들어가더라. 급한 마음에 주무르니 다시 혈색이 돌아오더라.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하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의사는 치료약을 먹으면 간과 신장에 치명타를 줄 수 있다고 하더라. 다행히 영록이가 균을 이겨내고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말하며 입술을 깨물어보였다.

신영록이 지난 21일부터 의식이 돌아왔지만 이 사실을 극비에 부친 사실도 털어놓았다. 그는 "의식을 회복했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전화오고 사람들 병문안도 잦아질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영록이가 부담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아 악화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구단 관계자 일부에게만 알렸다. 오늘 서귀포시청 관계자에게도 (일반병실이 아니라) 중환자실에 있다고 속였다. 아들 생각하는 아버지 마음으로 이해해달라고"고 털어놓았다.


신씨는 마지막으로 "빠른 초동 조치를 취한 제주 구단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면서 "아들이 그토록 좋아했던 그라운드에 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말을 줄였다.


제주=국영호 기자 iam90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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