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승부조작은 K-리그의 가장 연약한 고리를 물고 뜯었다. 골키퍼 성경모가 구속된 광주와 선수 여럿이 연루된 대전은 시민 구단이다. 예산 부족으로 선수들에 대한 처우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지금까지의 검찰조사 결과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선수들이 1차 포섭대상이었다.
과연 그런가. 아니 핑계다. 그것도 비겁한 핑계다. 유혹이 널려 있다고 해서 불의에 넘어간 것이 정당화 될 순 없다.
설기현은 유럽무대에서 성공한 뒤 "오늘날의 나는 어머니(김영자씨)가 만들었다"고 했다. 8세 때 설기현의 부친은 탄광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4형제를 거느린 어머니는 정선에서 강릉으로 이사와 하루 16시간의 고된 과일 행상일을 하며 자식들 뒷바라지를 했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어린 설기현은 이를 악물고 운명과 정면으로 맞섰다. 그리고 당당히 이겨냈다. 10년간의 유럽생활에 말 못할 고민도 많았겠지만 그는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 언제나 떳떳했다.
이들이 현실에 안주하고 편한 길을 택했다면 오늘날 한국 축구팬들은 두 명의 멋진 영웅을 만나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몇몇 선수들은 "한 번만 도와달라"는 친구, 동문 선후배의 부탁에 마지못해 승부조작에 가담했다고 한다. 이는 의리가 아니다. 지난주 "우린 살기 위해 뛰었다"며 눈물을 쏟은 대전 골키퍼 최은성(40)과 골을 넣은 뒤 무릎꿇고 팬들앞에 사죄한 죄없는 대전 선수들의 자긍심을 팔아넘긴 '인신매매' 행위다. 2군에서 묵묵히 훈련하는 선수들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행여 일확천금을 꿈꾸고 그에 상응하는 땀을 흘리지 않으려는 파렴치함을 경계하자는 뜻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정부는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강제수용수에 감금했다. 나치는 독일군이 유대인을 학살하는데 있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게 하기 위해 심리전을 펼쳤다. 수용소내 화장실을 1개만 만든 것이다. 아침마다 용변보기 전쟁이 벌어졌다. 수용수는 금세 가축 우리로 변했다. 생리적 욕구는 인간의 존엄을 가려버렸다. 그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는 독일군은 거부감을 잃었다.
하지만 일부 유대인은 끝까지 사람답기를 원했다. 매일 제공되는 딱 한 컵의 물 중 절반은 마시고, 나머지 절반으로 얼굴을 씻고, 이를 닦고 머리를 다듬었다. 무자비한 독일군도 차마 그들을 어쩌진 못했다.
K-리거는 많은 이가 우러러 보는 소소의 선택받은 자리다. 자긍심을 가슴에 새길 때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